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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결대로 가는 것

36일 차

by 다작이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지역 일간지의 신춘문예 공모전에 작품을 응모할 때의 일이었다. 4년인가 연달아 응모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대개 원고를 접수하러 가면 공모전 담당자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으레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기 두시면 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손가락을 따라가 보면 꽤 큰 박스 안에 원고가 쌓여 있다.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시 부문은 박스가 서너 개 정도 준비되어 있었는데, 각각의 박스 안에는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원고가 들어 있곤 했다.


대체로 소설 부문은 응모작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시 부문의 절반도 채 안 되었다. 일단 분량 탓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소설보다는 시를 쓰는 게 더 쉬울 거라는 그릇된 믿음 때문이 아니겠나 싶었다. 그렇게 산더미 같이 쌓인 원고를 보며 과연 저 많은 원고를 심사위원들이 언제 다 볼까, 하며 생각하곤 했다. 어차피 당선작으로 선정되는 한 편의 원고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쓰레기 더미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다.


마지막으로 응모했던 해엔가 어쩐 일인지 담당자가 따뜻하게 말을 건넸다. 마치 내가 그때를 기점으로 더는 응모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았는데 그 담당자는 내가 응모하는 부문이 어느 부문인지 알고 있었다.

"소설인가요? 소설은 이쪽에 두시면 됩니다."

가 소설을 들고 온 걸 어떻게 알았는지 물어볼까 하다가 안 그래도 공모전 기간 동안 내내 시달렸을 담당자를 생각하니 그런 자질구레한 말을 묻는 건 실례 같았다. 어쩌면 내가 들고 선 봉투의 두께를 보고 알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시 부문에는 서너 편 이상 응모하는 사람도 많기에 단편소설 1편 분량에 버금가는 혹은 능가하는 양을 들고 오는 경우도 많은 걸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혹시 이마에, '나, 소설 쓰는 사람이오.'라고 적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많이 바쁘시지요?"

"네, 이맘때면 그렇습니다. 제가 맡은 일이 이렇다 보니……."

"내일이 마감이니 이제 작품이 얼추 다 들어온 것 아닌가요?"

"그럴 리가요? 마감날 전체 원고의 절반이 넘는 양이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직 멀었다는 얘기지요."

이미 충분히 쌓인 원고를 보던 나는 담당자에게도 이 일이 보통 아니겠구나 싶었다. 수고하시라는 말과 함께 나는 그 자리를 나왔다.


갑자기 작품을 응모했던 기억이 떠오른 건 조만간 이 브런치스토리에서 수시로 휴대전화가 부산하게 울어댈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무음으로 설정하지 않으면 개인적인 문자메시지도 카톡도 혹은 알림 메시지도 아닌 것이 계속 뜨게 된다. 그건 다름 아니라 브런치북 신간 발행 소식이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브런치북을 발행하고 있나 하고 생각해 보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공모전이 다가오기 때문일 테다. 구독 중인 작가들만 해도 그 정도라면 전체 작가들의 브런치북이라면 두말할 게 없을 정도가 아니겠나 싶다.


브런치북을 발행하는 목적은 각자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만약 응모를 하게 된다면 공통적으로 수상작에 뽑히는 일일 것이다. 과연 어떤 작품들이 뽑힐까? 조심스럽긴 하나 아마도 어쩌면 한눈에 봐도 알 만한 그런 작품들이 선정되지 않겠나 싶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라는 속담은 있지만, 살다 보면 굳이 길고 짧은지 대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기 때문이다.


다시 이곳에 온 지 5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전에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글을 썼을 때에도 난 한 번도 '에디터픽 신작 브런치북', '오전(오후) *시 브런치스토리 인기 글', '완독률 높은 브런치북', '요즘 뜨는 브런치북', 그리고 '에디터픽 최신 글'이라는 코너 등에 내 글이 올라간 적이 없었다. 그 말은 누가 읽어도 한눈에 알아볼 만한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초창기에는 어떻게 하면 이 코너에 내 글이나 브런치북이 소개될 수 있을까, 하며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확실한 건 웬만해서는 내 글이 소개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는 것이다. 그저 뻔한 글만 쓰고 있으니 그런 걸 바란다는 게 무리인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번 프로젝트 공모전에 입상하는 작품들은 최소한 우리의 생각 속에서 이미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일단 공모전에 제출하는 형태는 브런치북이다. 즉 '에디터픽 신작 브런치북', '완독률 높은 브런치북', 그리고 '요즘 뜨는 브런치북' 같은 곳에 최소한 한 번이라도 소개된 작품이 아니라면 상식적으로 입상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어느 정도의 이변은 있을지라도 대체로 월드컵 경기가 시작되기 전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최종 순위 판도는 그다지 크게 바뀌지 않는다. 누가 우승 혹은 준우승을 하느냐, 어떤 나라가 2연패에 혹은 3연패에 성공하느냐 정도는 달라질 수 있을 테지만, 8강에 드는 나라를 점찍었을 때 어지간해선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나라들이 순위권 안에 포진된다는 점은 변화가 없다는 뜻이다.


이번에 총 10개의 브런치북을 선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응모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브런치북이 그 10개 안에 들어갈 확률은 '1/814만 5061' 정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를 기대하는 것은 로또 복권을 긁어놓고 당첨되길 기다리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뭐라고 하든 '나의 결 대로 가는 것'이다. 주변에서 어떤 일이 생기든 처음에 마음먹은 대로, 또 내 리듬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동안 내가 붙들고 있었던 내 결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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