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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by 다작이

학교 앞 버스정류장 근처꽤 큰 공터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아니다, 원래는 작은 공장이나 회사가 있었던 자리인 것 같은데,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 듯하다. 엄연히 땅 주인은 있을 테지만, 관리하는 이가 없어 지금은 방치된 상태로 보였다.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곳, 그래서인지 이름도 모를 풀들이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곳이다. 언제부터 그렇게 울창했었는지 나로선 알 도리가 없다. 내가 3년 전에 이곳으로 발령을 받아오던 날부터 저런 상태였다. 어쩌면 더 심한 상태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황폐하기 짝이 없다.


만약 맞은편에 누군가가 서 있다면 그가 누구인지 보이지 않는 곳이다. 아무리 크게 눈을 떠도 소용없다. 이미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긴 풀들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봤자 직선거리로 기껏 30미터도 안 되는 거리인데도 말이다. 심지어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면 사람이 있다는 것도, 혹은 자동차가 지나가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

그래서 행인들이 근처에 서서 담배를 많이 피웠다. 낮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어둠이 찾아들 때쯤이면 일대에서 가장 먼저 어두워지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하필 그 주변에 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가 있다. 또 대략 100여 미터 밑에 중학교까지 있었다. 두 곳 다 작은 규모의 학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변은 늘 한산하다. 당장 오후 여섯 시만 되어도 혼자서 이 일대를 지나다니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작은 소방도로 같은 이곳에 서면 그 어느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저렇게 울창한 수풀 속에 누군가가 있어서 웅크리고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수풀 한가운데로 끌고 들어가도 모를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울창하던 수풀이 일시에 잘려나간 일이 있었다. 아마 1년 전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군청으로 민원이 들어간 것인지, 아니면 도로 관리 차원에서인지는 모른다. 중장비가 총동원되어 이 일대를 싹 다 정비했었다. 한 이틀 정도 중장비 차량의 요란한 소리 때문에 불편함을 겪었다. 사흘쯤 지나던 날 퇴근하는 길에 들렀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풀들은 죄다 잘려 나갔고, 갖가지 나무들도 밑동만 남긴 채 흉물스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갈 길 가느라 바빴다. 예전처럼 몇 명이라도 서서 담배를 태우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멀리서 보면 누군지 알아볼 정도로 확연히 시야가 트여 있으니 굳이 이곳에 서서 담배를 피울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솔직히 보기 싫진 않았다. 여기저기 베어낸 풀들을 눕혀 놓아 마치 벌초 혹은 벌목의 현장을 보는 것 같긴 해도 한눈에 전후방과 측면의 풍광이 눈에 들어와 나쁘지 않았다. 아마 이 정도라면 밤에 다녀도 별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았다.


시간이 그만큼 정신없이 흘러갔다는 증거일까? 오늘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중에 휴대전화를 꺼내어 사진을 찍으려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언제 이렇게까지 다시 자라났는지 알 수 없었다. 햇빛이 과할 정도로 많이 내리 쬐인 탓인가 싶었다. 아니면 간간이 내리던 비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치 사람이 작정하고 심기라도 한 듯 다시 예전의 그 울창한 수풀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질긴 자연의 생명력 앞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잠시 움츠렸다가도, 심지어 다시는 소생불능일 것 같이 보이다가도 금세 그 작은 틈을 비집고 올라오는 저 생명력이 경이롭다 못해 위대해 보이까지 했다.


그런 저들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저 질긴 생명력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이 세상에 왔다면 때가 되어 떠나는 그날까지 이 지난한 삶을 이어가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세상 그 어디에도 죽어 마땅한 사람은 없다. 선량한 대다수의 사람을 위해 사라져야 할 것 같은 사람도 정작 본인은 그 생명에 미련을 둘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린 태어났다. 이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먼저 가는 사람들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또 구질구질하게 의미 없는 목숨을 이어가야 한다는 말 또한 아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지나 보면 그 어떤 것도 능히 견딜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렇게 설계되어 있는 것이 사람이다.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게 바로 사람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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