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의외로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것 아니다."
그런데 듣는 것 못지않게 나 역시 자주 입에 올리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체념한 듯 낙인을 찍어 버리는 말이다. 웃기는 건 이 말이 때로는 내게도 해당된다는 걸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겠다. 사실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시쳇말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꼰대 혹은 개꼰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나올 수 있는 말이다. 더 쉽게 얘기하자면 족히 사오십 대 정도는 되어야 입에 올릴 만한 말이라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다. 사람은 아무리 고친다고 해도 재사용이 가능한 존재가 아니라고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걸까? 여기에서 '고친다'라는 말은 성격이나 습관 및 행동에 있어서의 모종의 변화를 꾀하는 걸 의미한다. '예부터 제 버릇 개 못 준다'라는 말이 어쩌면 이와 같은 맥락을 띤 것이 아니겠나 싶다. 따지고 보면 어리석고 못난 사람의 버릇은 고치지 못한다는 뜻일 듯한데, 결국 사람의 본성은 어리석고 못났다는 걸 입증하는 셈이 되고 마는 것이겠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 이들은 당연히 가족일 테다. 가족은 혈연을 존재 기반으로 한다.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이해하고 친밀도 또한 다른 여느 집단의 사람들과 비교가 불가하다. 그러나 제 속에 있는 혀도 깨물고 마는 세상인 점을 감안한다면, 가족이 모든 걸 이해한다거나 우리의 입만대로 그들이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그걸 바란다면 우린 욕심이 지나친 나머지 실망에 빠지게 될 것이다.
가족의 성격이나 행동 등이 나의 바람이나 요구에 부합되지 않는 점이 있다고 해도 어쩌면 그것 자체로 그 사람의 한 부분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배우자든 자식이든 혹은 부모든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이 안 맞는 부분이 많고 클수록 상호 관계에 있어 불가피하게 갈등을 야기하게 된다. 가족이라는 미명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린 그 부분을 고치려 하지만, 말처럼 쉽게 될 리가 없다.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의 면면이 우리에게 잘 들어맞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상대방 역시 우리를 보면 늘 똑같은 생각을 한다는 점이겠다.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게 아니라더니 역시……."
출근 준비로 서두르던 아침에 아내에게서 한소리를 듣고 말았다. 사소한 계기로 촉발된 일이었는데, 아내가 그런 말을 할 즈음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대부분의 부부가 그러하듯 아내는 나의 특정한 어떤 부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그것만 좀 고치면 좋겠는데, 하며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절대 고쳐지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럴 마음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 생각은 나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아내의 어떤 부분들을 고쳤으면 하고 바라나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런 말이 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다 된 것이라고……. 그래서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것 아니다,라는 말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가 막힐 정도로 잘 맞아떨어지는 말이 아닐 수가 없다. 이런 걸 두고 우리는 진리라고 말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속담이든 격언이든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엔 다 그만한 근거가 있기 마련이다. 수많은 사례에 대한 통계상의 그리고 확률적인 타당성 등에 기반하여 이미 증명된 명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해서 이 통념을 깨뜨리려면 각고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살면서 많이 겪어봤을 테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누군가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거나 그가 변화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을 때 그 생각만으로는 절대 상대방을 바꿀 수 없다. 적어도 그 당사자가 바꿔야 한다는 자각과 노력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저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뒷방의 늙은이처럼 하나 마나 한 말을 뇌까리고 있을 뿐이다.
'사람은 고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