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아들이 PC를 교체했다. 본체 구입에 있어선 별다른 문제가 없었는데, 모니터를 두고 며칠을 고심했다. 전문 브랜드의 공식홈페이지부터 다양한 가격비교 사이트까지 아마 뒤져보지 않은 데가 없을 정도로 헤매고 다녔다. 이왕이면 조금 더 싼 가격에, 좀 더 좋은 품질의 것을 구입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한참 고민 끝에 모니터를 구입했다. 그걸로 일단은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다. 다음에 컴퓨터를 교체할 때까지는 적어도 더는 모니터로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끝난 게 끝난 것이 아니었다.
요즘 정체불명의 메일이 여기저기에서 날아온다. 뭔가 싶어 열어 보면 죄다 모니터 광고 관련이었다. 입력도 하지 않은 내 메일 주소를 어떤 경로를 통해 입수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건 신기하다는 말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개인정보 유출을 충분히 의심해 볼 만한 문제였다. 물론 사이버수사대 같은 곳에 신고하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다. 일전에 지인이 어떤 피해를 입어 정식으로 신고했을 때 그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봤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유출 관련 의혹은 찜찜하나 어쨌건 간에 결국은 알고리즘 때문이라고 아들이 말했다. 어떤 사이트에 들러 필요한 물건을 검색하고 나면 그때부터 계속 메일이 온다거나 마치 도스 시절의 무슨 배치파일처럼 자동으로 상품 관련 광고 창이 뜬다는 것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굳이 찾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서 찾아 보여주니 얼마나 편리하고 좋은가 싶을 테지만, 그만큼 나와 관련한 세세한 정보들이 자동적으로 데이터화 된다는 게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지 오웰이 예견한 '빅 브라더'의 세상이 된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유튜브에서도 모니터와 관련 있는 내용들이 최상위에 오르곤 한다. 이미 구입했으니 열람해 볼 필요도 없지만, 최상단에 노출되는 걸 막을 방법은 없다. 만약 그게 싫으면 몇 번만 집중적으로 다른 검색어를 넣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해 놓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었다. 종종 설전을 벌이곤 했던 나와 내 친구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이것도 다 어쩌면 유튜브, 특히 그중에서도 알고리즘이라는 이 빌어먹을 녀석 때문에 빚어진 일인지도 모른다.
내 친구가 봤을 때 나는 극우파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반면에 녀석은 명백한 극좌파이다. 왜 그런가 하니 둘은 정치 얘기만 했다 하면 서로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어디까지나 약간은 우파적 경향이 있긴 하지만, 유튜브에서 시청하는 영상이 죄다 극우파가 만든 영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제공하는 견해나 입장만 듣다 보니 극우파가 아닌 나도 타인에겐 극우파처럼 인식되는 게 아닌가 싶다.
하긴 녀석은 특정인 한 사람을 지나칠 정도로 비호하고 두둔하는 걸 보면 극좌파가 맞는 것 같긴 하다. 게다가 나는 그를 극도로 싫어하니 극우파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구분도 절대적인 가치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 테다. 극좌파건 극우파건 간에 그걸 규정짓는 것도 결국은 극단적으로 사상이 편향된 일부 유튜버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들은 멀쩡한 사람을 편협된 시각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만의 책임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결국 그런 그들이 쏟아내는 검증조차 제대로 안 된 정보를 접하고 믿어버리는 우리들의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무엇이든 치우치지 않는, 즉 균형 있는 생각을 가지려면 사회 현상이나 변화에 대한 냉철한 관찰과 인식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나만의 생각과 입장을 정립해야 한다. 바로 그런 치열한 고민과 탐색의 과정을 귀찮다는 이유로 생략한 채 그저 쉽게 뭔가를 얻으려는 우리의 안일함이 가져다준 역효과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이 알고리즘의 활약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은 없는 것 같다. 앞으로 더더욱 정교해지고, 더 많은 정보들이 우리에게 압력을 가해올 테다. 그 정보들을 외면한 채 살아갈 수는 없다. 다만 아무런 생각 없이 지금처럼 정보를 받아들인다면 나는 앞으로도 계속 편향된 생각들만 가진 채 현상을 판단하게 될 것이다. 알고리즘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