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를 조종할 수 있다면

by 다작이

요 며칠 새 간간이 비가 왔다. 우산을 펴지 않아도 될 정도부터 우산이 소용없는 수준까지 다양하게 왔다. 가끔 날씨를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해 보곤 한다. 십이 년째 대중교통을 이용해 통근하다 보니 아무래도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예전에 운전했을 때와 비교해 보면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 심지어 그날그날의 날씨에 따라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기까지 한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고스란히 맞아야 될 때도 더러 있다. 우산이 있어도 있으나마나 한 그런 날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상쾌한 기분으로, 혹은 어떤 날은 피로에 절어 집을 나선다. 대체로 일어나 창밖부터 내다보며 날씨를 확인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는 한 날씨를 알 순 없다. 한 손엔 늘 그렇듯 지난밤에 읽던 책을 들고 있고, 쓰고 있던 글이 화면에 노출된 채 휴대전화를 움켜쥔 상태일 때가 많다.


건물을 나서기 직전에 우선 땅바닥의 상태부터 눈에 들어온다. 내게는 그것이 날씨를 판단하는 가장 확실한 자료가 된다. 눈은 그나마 좀 나은 편이다. 어지간해선 그것이 녹아 물의 형태로 바닥에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비만 보면 좋았던 기분이 싹 달아난다. 으레 이럴 때면 속으로 욕이라도 한 바가지 내뱉고 나서 하루를 시작한다. 물론 이때 누가 옆에 있으면 마음대로 싫은 소리도 내뱉을 수 없다. 손에 들었던 책을 얼른 가방 속에 넣거나 휴대전화의 액정을 닫은 채 가방 옆구리 주머니에 꽂아 넣고 다니는 접이식 우산을 꺼내 들어야 한다.


하늘이 하는 일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익히 잘 알고 있으나 오죽하면 출퇴근 시간만 피해서 비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데 같은 비를 두고도 저마다 느끼는 감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비를 혐오할 정도로 싫어하지만, 어떤 이들은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것만큼 운치 있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한다. 심지어 낭만의 극치라며 행복에 겨운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다.


비의 양에 관계없이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면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또 이틀 전과 같이 적지 않은 비에 돌풍까지 동반되면 망연자실 있게 된다. 일단은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해서 두 개의 손 중 하나만 쓸 수 있다. 손 하나, 즉 왼손은 비 오는 날이 되면 그냥 없는 손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보행 중이라면 오른손으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한다. 특히 어려운 건 우산을 목과 어깨 사이로 끼워놓은 채 카톡이나 메시지 보내기이다. 다른 연락은 잠시 후에 해도 되지만, 당장 답신을 보내야 할 때에는 우선 건물의 처마부터 찾게 된다.


버스와 기차, 또 지하철을 탈 때마다 물이 뚝뚝 흐르는 우산을 들고 타는 것도 꽤 고역이다. 내 우산에서 떨어지는 물도 거추장스럽지만, 조심성 없이 물을 흩날리고 지나가는 누군가의 우산은 대책이 없다. 게다가 손은 늘 젖어 있는 상태이다. 편한 청바지를 입었을 때는 바지에라도 물기를 훔쳐낸다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그럴 수도 없다. 닦아내도 닦아내도 눅눅한 느낌까지 떨쳐낼 순 없는 것이니까. 때로는 그 눅눅함이 곧바로 꿉꿉함으로 이어져 불쾌감은 수직 상승하게 된다.


으레 비가 오는 날이면 늘 들고 다니는 책도 가방 속에 넣어놔야 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대개 그렇듯 난 책이 비에 젖는 걸 참을 수 없다. 책이 비에 젖는 날이면 그냥 하루를 죄다 망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한 번은 가방에 넣어둔 책이 비에 흠뻑 젖어 책의 상당 부분이 들러붙은 적이 있었다. 폭우주의보가 떨어진 날로 기억하는데, 미련 없이 그 책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래서 아무리 읽고 있던 뒷부분이 궁금해도 비가 오는 날엔 절대 가방에서 책을 꺼내 들지 않는다.


그나마 요즘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 지금처럼 이렇게 폰으로 글을 쓰면 된다. 비가 와도 이젠 할 수 있는 일이 생긴 셈이다. 생각을 가장한 채 차창에 기대어 졸지 않아도 되고, 물끄러미 밖을 주시하며 허락도 없이 내리는 비를 더는 원망하지 않아도 된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비 오는 게 내 마음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정 안 되면 밤 사이 비가 내리고, 낮엔 뚝 그쳤으면 좋겠다. 그것도 어려우면 출퇴근 시간만 피해서 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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