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이다. 지금 있는 곳은 왜관역, 열차시각표에 따르면 5시 33분에 대구역으로 가는 대경선이 들어온다. 어쩌면 오늘도 족히 10여 분은 늦게 올지도 모른다. 요 근래 계속 그랬다. 처음엔 왜 그런지 몰랐다. 얼마 전에 있었던 불의의 사고로 인한 안전 조치, 즉 서행 운행 때문이라는 걸 불과 며칠 전에 알았다. 그 사고는 청도역에서 선로 작업 중이던 철도 근로자들이 열차에 치어 안타깝게도 사망한 사고였다. 툭하면 연착해 불평불만을 잔뜩 늘어놨었는데, 자초지종을 알고 난 뒤로는 묵묵히 기다려야 했다.
그 인정사정없던 폭염에도 끄떡없이 기다리곤 했는데, 고작 이 정도 기온에 못 기다릴 이유는 없다. 살포시 내리쬐는 햇빛이 오늘은 따사롭게 느껴졌다. 당연히 더위가 다 간 건 아니겠지만, 지난 네 달간의 살인적인 더위를 어찌 견뎌냈는지 생각할수록경이로웠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던 그 말도 결국은 틀림이 없는 말이었다.
아무튼 23분만 달려가면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 도착한다. 역에 도착해서도 한 번 더 지하철을 타고 열한 개의 역을 지나가야 한한다. 열한 번째의 역에 내려 도보로 10분쯤 가야 집에 도착한다. 대략 6시 50분은 되어야 내 방에 발을 들일 수 있지만, 이미 마음만은 코앞에 집을 둔 기분이다. 어쨌거나 지금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연착 예상 시간을 포함해 족히 30여 분은 남았을 것이다. 휴대전화만 마냥 들여다보고 있어 봤자 유익할 것도 없다. 이런 자투리 시간에 글을 쓰기 위해 그동안 휴대전화 키패드를 그렇게 두드려대지 않았을까?
맞다. 지금 이 글은 딱 한 마디로 줄일 수 있다.
'저, 도서관 갑니다.'
그런데 이렇게만 쓰면 글이 될 수 있다. 퇴근 후 공공도서관에 잠시 들른다는 그 단순한 사실도 분명 맥락이 있을 테다. 전후의 과정과 현재의 생각 등이 포함되어야 한 편의 글이 완성되는 것이겠다. 대체로 나는 주말을 이용해 공공도서관에 간다. 책을 빌리는 목적도 있으나, 열에 아홉은 노트북 장비를 챙긴 채 글을 쓰러 간다. 그곳만큼 글을 쓰기 좋은 곳도 없기 때문이다. 카공족들이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시간을 보낼 만한 유일한 곳이 바로 공공도서관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노트북이 없다. 출근할 때부터 챙겨 오지 않았다. 오늘은 전적으로 책을 빌리기 위해 간다. 사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지난 방문 때 빌린 책 중 세 권이 시원찮기 때문에 다른 책을 빌리러 가는 것이다. 솔직히 나처럼 이러는 건 작가에 대한 대단한 실례라는 걸 모를 리는 없다. 한 권의 책이 나오려면 얼마나 많은 수고와 고통이 따르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건 책을 출간하겠다며 나름 준비하다 호되게 미끄러져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내 흑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일이었다. 그 일을 겪고 난 뒤에 어떤 책을 읽어도 함부로 읽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언제 그랬냐는 듯 나는 돌변하고 만다. 잠시 작가지망생이나 출간지망생이 아닌 순수 독자 코스프레를 하고 나선다. 그러면서 세상은 넓고 그 세상만큼 널리고 널린 게 책인데, 마음에 와닿지도 않는 책을 굳이 붙들고 있어야 하냐며 큰소리부터 쳐 보는 것이다. 어찌 되었건 간에 내겐 독자로서의 권리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양서는 끝까지 읽을 의무가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책은 날 위해서라도 얼른 갈아타는 게 현명하기 때문이겠다. 다행히 미리 봐 놓은 책이 세 권 있다. 곧 반납하려는 책과 맞바꾸는 셈이 되겠다.
이제 10분만 걸어가면 도서관에 도착한다. 내가 빌리려는 책을 부디 누군가가 먼저 빌려가지 않았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