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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 적응하기

141일 차

by 다작이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아주 오랜 태곳적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하나의 기제라고 할 수 있겠다. 환경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을까? 언제까지고 우리에게 늘 익숙한 환경이 그대로 남아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환경이 바뀔 수도 있는 문제이고, 어쩌면 단순히 장소를 바꾸는 것만으로 환경은 변하기 마련인지도 모른다. 그 어떤 환경에 놓이든 처음엔 다소 어색해도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적응하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되거나 생존에 치명적인 영향을 초래할 테니까.


너무 거창하게 글을 시작하고 있는 것 같다. 모처럼 만에 공공도서관에 와 자리를 잡은 뒤에 글을 쓰고 있다. 글 쓰기에 사실 이보다 더 이상적인 환경은 없다. 모든 사람들이 필요 이상의 소음을 내지 않을 정도로 고요한 데다, 글을 쓰다가 뭔가를 참고할 만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서가로 가서 관련된 책을 뽑아 올 수 있기 때문이겠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미묘한 환경의 변화가 낯선 느낌이 든다. 정체를 알 수 없으나 뭔가가 달라진 것 같은 생각에 한참 전부터 그게 뭔지 살펴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 없다. 어쨌거나 어느새 적응해 버렸다는 뜻이 아니겠나 싶다.


그러고 보니 그 정체를 알아낸 듯하다. 사실 그동안 집 앞에 있는 파스쿠찌에서 꽤 많은 글을 썼었다. 실내를 가득 채운 커피 향, 사람들이 내는 적절한 소음, 그리고 템포가 빠르든 느리든 늘 들려오던 음악소리 등이 귀에 익었던 모양이다. 브런치에서 두 번째 활동을 하던 때만 해도 파스쿠찌는 자주 가던 곳이었다. 커피전문점이 다른 어느 곳보다도 글이 더 잘 써지는 곳으로 알던 때였다. 못해도 1주일에 두세 번은 갔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갈 때마다 서너 편씩의 글을 썼다는 것이겠다.


결국 커피전문점에서 글을 쓰고 있지 않아서 든 생각인가 싶었다. 마치 불편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글을 쓰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보면 환경에 적응한다는 건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귀를 익숙하게 했던 백색소음이 없어서였을까? 커피를 제조하기 위해 돌아가던 커피 머신 소리도, 실내를 가득 채우던 장르 불문의 음악들도 듣고 싶어졌다. 몇몇 사람들이 두런거려 고개를 돌리게 했던 그 소리도 문득 그리워졌다. 그래서 무엇이든 길들이기 나름이라고 말하는 모양이다. 커피 전문점의 환경에 적응된 내가, 이 완벽하고 이상적인 글쓰기 환경에 약간의 거부감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곧 있으면 도서관 문 닫을 시간이다. 마침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실내에 짧은 음악이 흐르면서 10분 후 문을 닫겠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이곳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폐관 시각이 오후 5시라는 게 참 그렇다. 1주일에 딱 한번 있는 일요일이다. 특별한 약속만 없다면 평일처럼 저녁 10시에 문을 닫으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이곳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주말을 즐겨야 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5시에 폐관하는 게 과한 처사가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못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밖의 날씨가 어떻건 간에 따뜻한 실내에서 아무 걱정 없이 책을 읽고 글도 쓰다가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서글픈 생각부터 든다. 온통 젊은이들이 돌아다니는 곳에서 추레한 차림으로 다녀야 한다는 것도 마뜩지 않고, 정작 갈 데도 없다. 아직 점심을 안 먹었으니, 일단 어디 조용한 데라도 가서 식사나 하며 이후에 뭘 할지 생각해 봐야겠다. 내겐 그래도 다섯 시간 정도의 여유가 남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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