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는 걸 꺼리진 않지만, 꽤 오랜 기간 동안 극장에서 영화를 본 기억이 없다. 간혹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겨도 언제 갈까 하는 생각만 하다 늘 집에서 유료로 결제하고 보곤 했다. 같이 볼 사람 없이 혼자서 극장가를 배회할 배짱도 없는 데다, 그 비싼 돈을 들여 굳이 현재 상영 중인 영화를 봐야 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겠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멤버십 혜택으로 인해 최근 6개월 이내로 무려 네 편의 영화를 봤었다. 나로서는 거의 몇십 년치에 달하는 영화를 몰아서 본 셈이었다.
정가인 15000원이 아니라 리클라이너 좌석으로 인해 발생된 추가 요금 3000원만 결제한 것이라 아마도 공짜라는 기분으로 본 게 아닌가 싶다. 그리 보면 사람이 참 어리석다. 그동안 휴대전화 요금을 많이 낸 것 때문에 그만큼 적립된 포인트라는 건 생각지 못하고 당장 싼 가격이라는 사실에 들떴던 게 아니었을까? 아무튼 그렇게 해서 본 영화는 '콘클라베',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노이즈', 그리고 '주라기 월드'였다. 영화의 좋고 안 좋고를 떠나 내겐 꽤 뜻깊은 이벤트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몇 년이 지나가더라도 영화 한 편 볼 수 없는 게 나였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조금도 까다롭지 않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그런 기준이라고 할 것도 없다는 게 맞을 듯하다. 특정하게 선호하는 장르가 있거나 혹은 믿고 보는 감독이나 배우의 작품 같은 게 내게 있을 리 없다. 또 우리나라에서 만든 영화는 절대 안 본다는 어떤 지인의 말처럼 한국영화에 대한 편견도 없다. 솔직히 편견이라는 것도 뭘 좀 알아야 생기는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보면 영화에 대한 편견은, 적어도 내겐 해당사항이 없다. 손에 집히는 대로 영화를 볼 뿐이다. 그게 내게 있는 영화를 고르는 유일한 기준이 아닌가 싶다.
난 영화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 배경지식도 없고, 관람 중인 영화와 관련한 정보 따위도 없다. 그저 내가 본 대로를 느끼고 받아들일 뿐이다. 이번에 본 영화도 장르가 모두 달랐다. 액션물부터 공포영화도 있었고, 어떤 건 꽤 깊은 생각을 해야 볼 수 있는 영화였다. 마치 각양각색의 맛이 나는 서로 다른 요리 음식을 맛본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문득 영화들을 보며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나라는 작품성이 있는 영화를 만들지 못할까 혹은 만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작품성이란 말도 객관적으로 보증받은 말은 아니다. 그냥 내가 느끼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더 쉽게 말해서 만약 제값을 주고 봤다고 가정했을 때, 비용을 추가로 치르더라도 두 번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냐는 것이겠다. '콘클라베'만 그랬지 나머지 세 편의 영화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노이즈'와 '주라기 월드'는 제값을 주고 봤다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부터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볼 때 나는 꽤 단순한 잣대를 갖고 있다. 다 보고 나서 모든 게 해소된다면 그건 잘 만든 영화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습성이 있다. 영화가 끝난 뒤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다거나 다시 한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바로 그 영화가 내겐 명작이 된다. 그런데 이번에 본 영화들도 대체로 그랬고, 지금까지 본 한국영화는 시간 때우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특정한 영화를 깎아내릴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극한직업'이나 '범죄도시' 같은 류의 영화가 높이 평가된다면 그건 문제가 있지 않겠나 싶다. 사실 영화에 아무리 문외한이더라도 영화를 제작하는 입장에선 예술성만 갖고는 제작할 수 없다는 걸 모르진 않는다. 최소한 제작에 든 그 막대한 비용을 회수하려면 흥행성은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사항일 테다. 가령 아무리 예술성이 높은 작품이라 인정된다 해도 사람들이 봐주지 않으면 그 작품은 영화로서는 실패작이란 얘기가 되기 때문이겠다. 사정이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예술성 있는 영화를 못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지 못한다고, 혹은 만들지 않는다고 보는 게 옳지 싶다.
극장에 내걸린 영화들의 면면을 보면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영화가 너무 많다. 어떤 명확한 세계관도 없이 흥행이 된다 싶으면 너나 할 것 없이 후속 편 제작에 들어간다. 굳이 깊은 생각을 요구하는 영화들이 쏟아져 나와야 할 이유가 사라져 버렸다. 뭐든 단번에 보는 대로 의문이 해소되어야 하고, 딱 한 번만 봐도 상관이 없는 영화라면 좋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최소한 천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을 만한 그런 요란한 영화만이 살아남는 사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예술작품을 대할 때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예술작품을 올바르게 감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생각하지 않고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은 예술이라고 칭해선 곤란할 것이다. 그건 그저 단순한 오락물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물론 영화라는 것이 예술이냐 오락물이냐 하는 보다 더 근본적인 정의가 필요하겠지만, 인간의 1차적인 감각 충족에만 몰두하는 영화가 넘쳐나는 지금과 같은 세상은 희망이 없는 세상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최소한 영화가 예술로서의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