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by 다작이

아침부터 계속 눈이 감기려 한다. 늘 잠이 부족한 탓이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잠이 많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하긴 이 많은 잠을 다 해결하려면 자도 자도 끝이 없을 테다. 아침에 더 자고 싶은 욕망을 가까스로 누르고 집을 나서면서 비로소 하루가 시작된다. 역 승강장에 내려와 대경선을 기다리는

동안 연신 하품이 나는 것도 다 그 때문이겠다.


오늘도 대경선은 연착되었다. 일상적으로 생기는 상황이라 그리 새삼스럽지도 않다. 오히려 늦으면 늦을수록 득이 된다. 지각만 하지 않으면 몇 분에서 이십여 분쯤 늦는 건 내게 글을 더 쓰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미 손에 들려진 휴대전화의 폴더를 열어젖힌다. 이내 열차가 승강장으로 들어와 탈 준비를 마친다.


열차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빈자리가 눈에 띈다. 휴대전화의 바탕화면 첫 페이지에 깔린 브런치 앱에 접속한다. 그때마다 세상이 참 좋아졌다는 걸 늘 느끼곤 한다. 오늘의 두 번째 글을 써 볼까, 하며 길게 심호흡을 한 번 들이켜 본다.


어쩌면 이럴 때가 가장 행복한 때가 아닌가 싶다. 마음먹음과 동시에 쓸 거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두어 번 접었다 펴고 괜스레 관절도 꺾어 본다. 뚝뚝, 하는 소리는 글쓰기의 준비태세가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인 셈이다. 휴대전화의 키패드에 오른손 검지, 즉 집게손가락이 닿기 전에 이미 뇌는 한창 예열 가동 중에 있다.


출발선에서 신호 총소리를 듣고 튀어나가는 단거리 주자처럼 손가락이 키패드에 내려앉자마자 허공 위를 날아다닌다. 좋은 글이 될지 혹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글이 잘 풀리는 날이면 하루도 순조롭게 시작되곤 한다. 좋은 기운을 이어받아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여유가 생긴 탓이리라.


한창 글을 쓰다 얼굴을 들어보니 열차 안에 있는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좌석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다. 나머지 절반은 휴대전화로 뭔가를 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폰이 없었던 시절에는 과연 사람들이 뭘 하며 시간을 보냈을지 궁금해졌다. 얼른 시선을 거두고 다시 휴대전화에 얼굴을 파묻는다. 좋은 기분을 망치지 않기 위해 자세를 고쳐 잡고 허리를 더 꼿꼿하게 세워본다. 아무리 기분이 좋아도 자칫하면 졸음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건너편에서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띈다. 책 제목이 얼핏 보였다. 공자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책인 듯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는 책에 푹 빠진 것처럼 보였다. 모르는 사람인데도 보기가 참 좋았다. 저렇게 읽는 것이 진짜 책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얼른 이 글을 마치고 난 후 어젯밤에 읽던 책을 꺼내 들어야겠다 싶었다.


여전히 한 번씩 눈이 감기지만 의외로 집중이 잘 되었다. 편안한 상태로 글을 쓰고 있다. 바쁘게 움직이는 손가락 너머로 글자가 찍힐 때마다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잠시 눈을 감고 방금 전에 쓴 대목을 음미해 본다. 피곤한 가운데에도 두뇌가 회전한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멀리 시외버스터미널 입구를 빠져나오는 버스가 보인다. 한창 키패드를 두드리고 있다 보니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어쨌거나 지금부터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될 참이다.


누가 읽어도 멋진 글감이 준비되면 얼마나 좋을까? 또 읽을거리가 풍부한 글이 완성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다. 내 한계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버스가 정차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어차피 인생이란 건 티끌을 모아 태산을 쌓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소리도 안 나는 가랑비라도 하루 종일 맞고 돌아다니면 옷이 흠뻑 젖는 법이다. 방금 전 이렇게 해서 나는 또 하나의 작은 티끌을 손에 움켜쥐려 한다. 가랑비를 온몸에 맞고 직장으로 향하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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