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인 6일 낮 2시에 한국건강관리협회 대구지부 병원에서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다. 사실 어떤 이상 증상이 있으면 어쩌나 싶어서 두려움도 있었지만, 더 솔직하게는 귀찮다는 생각이 앞서 최근 몇 년 동안은 약식으로 검사를 받았었다. 어쨌거나 검사를 진행한 의사로부터 이상이 없다는 말만 줄곧 들었으니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고 살았다. 게다가 평소에 아프다거나 하는 등의 어떤 증상도 없었으니 뭐 별다른 일이 있겠나 싶었다. 불과 닷새 전에 검사를 받아놓고도 까마득하게 잊고 지낸 이유기도 했다.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번호를 보니 지역번호가 대구였다. 문득 검진을 받은 기억이 나 전화를 받았다. 한국건강관리협회 대구지부 대장내시경팀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모골이 송연하다는 말이 딱 이런 때에 생각이 난 건 왜였을까? 내심 짐작하듯 별 이상이 없다면 따로 전화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늘 해왔던 대로 가방을 메고 건물을 나서 계단으로 내려오던 난 결국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아무래도 편하게 걸으면서 받을 수 있는 전화가 아닌 듯했다. 그 짧은 시간에 별의별 상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말에 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안녕하세요? 여긴 한국건강관리협회 대구지부 대장내시경팀입니다. 혹시 지난 목요일 오후에 종합건강검진 하시고 나서 조직 검사했던 거 기억나시나요?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따로 뵙고 상담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대장내시경 외에도 이것저것 검사하신 게 많으니 이참에 내원하셔서 종합적인 결과를 들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원래 난 어지간한 외부 자극에도 잘 흔들리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다. 좋게 말하면 멘털이 강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단적으로 그만큼 무심하고 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나를 고작 그 한 통의 전화가 뒤흔들어놓고 말았다.
32년 지기에게 얘기를 했더니, 별일이 아닐 거라고 했다. 병원에서는 의례적으로 그렇게 말한다며 날 안심시키려 했다. 물론 불안에 떨지 말라는 단순한 위로용 멘트라는 걸 모를 리는 없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종합건강검진 후 아무 이상이 없는데 별도로 내원하라는 연락을 받았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든 것은 추가로 검사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 내원 당일에 금식하고 오라는 당부 때문이었다.
의학적인 지식도 전혀 없고, 지인 중에 이 문제로 뭐라도 물어볼 만한 사람이 없다. 전화를 끊고 나니 검진 날 대장에서 떼어냈다는 용종 네 개가 문득 떠올랐다. 1cm짜리 두 개, 0.5cm짜리 두 개였다. 이 나이에 건강검진을 받다 용종 몇 개를 떼어내는 정도는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겠지만, 최소한 나도 1cm짜리 두 개는 눈여겨봐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큰일이 아니기를 바랐다. 당연히 아닐 거라며 믿고 싶었다. 그런 불확실한 확신 속에서도 몇 가지 생각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설마 대장암은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고 해도 설마 한창 진행된 상태는 아니겠지?'
'정말 그렇다면 한창 돈 들어갈 우리 애들은 어쩌지?'
정년퇴직을 아직 십 년 남겨 둔 상황이다. 평생을 뼈 빠지게 돈만 벌다 죽는 것도 억울하겠지만, 아직 금전적으로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는 상황이니 지금은 더더욱 그럴 때가 아니었다.
내원은 27일 오후로 잡혔다. 안 그래도 이 글을 쓰는 동안 라라크루 작가님 중에 간호사로 재직 중이신 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능성들에 대해 하나하나 말씀해 주셨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놓였던 건, 내가 염려하고 있듯 어느 정도 병이 진행된 상황이라면 병원에서는 당장 내원하라고 하지 2주가 넘게 지난 그날에 예약을 하진 않을 거라는 얘기였다.
아무래도 병원을 갔다 오기 전까지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다. 제발 별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