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번째 명언: 짧게, 명료하게, 그림 같이 써라.
네이버 블로그에서 알게 된 한 이웃님이 있습니다. 종종 제가 소통하는 분 중의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자주 필사를 하십니다. 좋은 글귀나 명언 등을 그냥 베껴 쓰는 차원이 아니라 캘리그래피로 만드는 분입니다. 우연히 그분의 방에 들렀다가 오늘 얘기할 명언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내용이 좋은 데다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힘이 큰 것 같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좀 사용해도 되겠냐며 양해를 구한 뒤에 제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려놓기까지 했습니다. 무슨 내용인데 이리 서설이 기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무엇을 쓰든 짧게 써라.
그러면 읽힐 것이다.
명료하게 써라.
그러면 이해될 것이다.
그림 같이 써라.
그러면 기억 속에 머물 것이다.
조지프 퓰리처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언론인에게 해마다 주는 퓰리처상의 그 퓰리처가 맞습니다. 그는 현대신문의 정형을 확립하는 데에 크게 공헌했다고 평가받는 언론인입니다. 그는 또 후일에 유언장을 통해 컬럼비아대학교에 재산을 기부했습니다. 퓰리처상을 제정해 1917년 이래 매년 언론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들에게 상을 수여하게 했습니다. 이것만 보면 굉장히 존경받을 만한 언론인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언론인으로서의 그의 행적은 세인들로부터 평가가 갈리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에 대한 얘기는 우리의 관심 밖의 일일 겁니다.
퓰리처가 제시한 글쓰기의 원칙은 세 가지입니다. 짧게 쓰기, 명료하게 쓰기, 그리고 그림 같이 쓰기입니다. 그가 과연 이 세 가지 원칙을 평생의 글쓰기의 지침으로 삼았는지, 혹은 여기에 충실한 글을 썼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충분히 그 의미를 곱씹어 폴 필요가 있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첫째로, 그는 무엇을 쓰든지 짧게 쓰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글 전체의 길이도 포함되긴 할 겁니다. 가령 한 편의 수필이 A4 네다섯 장의 분량이라면 읽는 사람의 입장에선 읽기가 망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은 글의 전체적인 길이에 국한된 건 아닐 겁니다. 어쩌면 오히려 각 문장의 길이에 대한 얘기인지도 모릅니다. 큰 도움은 안 되나 많은 글쓰기 관련 책을 쓴 자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문장을 짧게 쓰라는 것입니다.
예전에도 어쩌면 그랬겠지만, 요즘과 같이 바쁜 현대인들은 절대 길고 장황한 글을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시간적인 문제도 있겠으나 더 큰 문제는 그럴 만한 인내심도 없고, 그걸 요구할 수도 없다는 겁니다. 글을 쓰는 건 필자이지만, 읽는 건 독자에게 달린 일입니다. 아무리 잘 쓴 글이라고 해도 독자로부터 외면을 받는다면 그 글은 죽은 글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독자가 짧은 길이의 문장과 글을 선호한다면 이를 외면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짤막하게 쓴 글이 환영을 받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어떤 글쓰기 책을 펼치든 수많은 저자들이 손에 꼽는 글쓰기 원칙 중 이 '짧게 쓰기'는 빠지는 법이 없을 정도입니다.
둘째, 어떤 글이든 명료하게 쓰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독자가 읽었을 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게 쓰라는 말입니다. 어느 누군가의 강의에서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대개 다음의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쉬운 글을 어렵게 쓰는 사람
쉬운 글을 쉽게 쓰는 사람
어려운 글을 어렵게 쓰는 사람
어려운 글을 쉽게 쓰는 사람
가령 우리 각자가 어느 유형에 속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닐까 싶긴 합니다. 그러면서 강의자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쉬운 글은 그 어느 누구라도 쉽게 쓸 수 있지만, 정작 어려운 글은 어렵게 쓸 줄만 알지, 어려운 글을 쉽게 쓰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어려운 글을 쉽게 풀어서 쓸 수 있는 사람, 그가 진정으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의 진위가 어떻건 간에 글을 쉽게 써야 한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겁니다.
셋째, 그는 그림 같이 쓰라고 합니다. 만약 글 속의 장면이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라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마치 자신이 그 대화 상황에 참여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또 주변이나 배경을 묘사할 때에는 우리가 그걸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써야 한다는 뜻이겠습니다. 말은 참 쉬워 보입니다만, 그림 같이 쓰라는 말만큼 막연하게 들리는 말도 드물지도 모릅니다. 글자 하나하나가 단순하게 문자로써만 인식될 게 아니라 글 전체가 하나의 이미지로 다가올 수 있게 쓰라는 말이니까요.
우리가 그림을 감상할 때를 떠올려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화가의 신상명세나 화풍의 경향 등을 아는 게 감상에 도움은 되겠지만, 감상하는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건 그림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입니다. 딱 봤을 때 사람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굳이 설명이라는 게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설명은 감동 후에 얻는 덤일 테니까요. 보고 그냥 느끼면 되는 것이 그림입니다.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글, 한 번을 읽어도 그 의미가 와닿게 쓴 글, 그것이 어쩌면 그림 같이 쓴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막상 적어놓고 보니 퓰리처가 강조한 글쓰기의 원칙은 지나칠 정도로 단순한 것들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글을 쓰는 것이 단순하다거나 쉽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뭔가 대단한 원칙이나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겠습니다. 그게 무엇이 됐든 가장 어려운 것은 기본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기본이라는 것은 결코 복잡한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닙니다. 누구든 마음만 먹는다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것이 바로 기본이고, 그 기본을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말이 됩니다.
짧게, 명료하게, 그리고 그림 같이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