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일 차
신용카드를 사용하던 중에 승인이 거부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용한도초과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느닷없이 이런 황당한 일이 발생한 데에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었다. 카드를 발급받던 당시의 한도에 대한 상향 조정을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성격상 카드의 총 이용한도조차 모르는 나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음으로는 얼마 전에 뭘 구입하느라 목돈에 준할 만큼의 결제를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내게는 신용카드가 그다지 필요 없다. 시간이 흘러도 어지간해서는 이 카드로 물건을 구입하는 일이 좀처럼 없다. 이번에 산 물건도 내 개인적인 용도로 산 게 아니라 가족을 위한 소비였다. 지금 갖고 있는 카드를 쓴 게 벌써 족히 5년은 넘었지만, 내 개인 용도로 사용한 건 채 5회가 넘지 않았다. 그것도 죄다 10만 원 이내에서 사용한 것들 뿐이었다. 매일 통근하기 위한 교통카드의 용도 외에는 그 어떤 소비도 나는 하지 않는다. 솔직히 현금만 두둑하다면 나 같은 유형의 소비 패턴을 가진 사람이라면 굳이 신용카드를 들고 다녀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안 그래도 며칠 전에 가족과 함께 신용카드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 아주 근본적인 질문이 나왔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사용자에게 더 득이 될지 아니면 카드회사에 더 이득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건 물어보나 마나 한 물음이었다. 카드회사가 땅 파서 사업하는 그런 곳이 아님은 명백할 테다. 어떤 식이 됐든 회사에게 막대한 이익이 되니 운영되는 것이겠다. 신용카드는 이미 사용하기 시작할 때부터 사람들의 삶을 꼬이게 만들지도 모른다. 더 단적으로 얘기하면 발급받는 그 순간부터 사용자에겐 '마이너스'가 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게 본다면 결국 신용카드는 필요악인 셈이다.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때 신용카드의 발급과 해지의 절차가 너무 불편해 사용자로부터 원성을 산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카드 발급이 아무 데서나 이루어졌다. 발급을 대행해 주는 사람들에게 신청서만 제출하면 이삼 주 안에 카드가 집으로 배달되던 때였다. 몇 가지 결격 사유에 해당되지만 않으면 언제 어디에서든 누구라도 발급이 가능했었다. 그런데 막상 카드를 해지하려고 하면 카드 회사에 직접 가야 했었다. 그때만 해도 유선상으로는 카드 해지가 안 되었다.
어떻게 해서 이 신용카드라는 게 발명이 된 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아이디어를 낸 사람의 입장에서는 시쳇말로 대박을 터뜨린 사례가 아니겠나 싶다. 어차피 일반인들의 삶이란 다음 월급날을 기다리는 운명이다. 뭔가를 사려면 최소한 다음 달의 월급이 나와야 실행에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현금이 없는 사람들이 물건을 사려고 할 때 일단 카드회사에서 내게 돈을 빌려주는 식이라고 보면 된다. 그 돈으로 필요한 물건을 산 뒤에 차차 그걸 갚아나가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게 신용카드의 메커니즘이다. 결국 이를 한 마디로 줄이면 '빚'이 된다.
참고로 이용한도 상향 신청에 채 2분도 안 걸렸던 것 같았다. 앉은자리에서 한도를 1.75배나 상향 조정했다. 얼마나 편리해진 세상인지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이게 결코 좋은 일은 아니었다. 내가 떠안게 될 빚의 가용 범위가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다. 올가미에 스스로 걸려드는 줄도 모르고 좋아하는 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됐든 문제가 해결되어 너무 기뻤다. 하마터면 소리까지 지를 뻔했다.
문득 얼마 전에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어느 사람이 한 얘기가 떠올랐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얘기를 천연덕스럽게 하는 걸 보며 오히려 내가 더 당황했던 기억이 났다. 두 여자분이 한 말을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된 셈인데, 내용을 대략 옮기면 이렇다.
"실내 인테리어를 하려고 알아봤더니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안 그래도 요즘 만만찮게 든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할까 고민 중이야."
"무슨 걱정이야? 하면 되지."
"무슨 돈으로?"
"대출 놔뒀다가 뭐 할래?"
"나보고 대출받으라고?"
"그래, 요즘 자기 돈으로 뭘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빚까지 져가면서 그래야 하나 싶어서 말이야."
"왜 그래? 요즘은 빚도 재산이고 능력이야."
갓 마흔 되었을까 싶은 두 사람이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나 보다 하며 발길을 돌렸지만, 그 말은 내내 이명으로 남았다.
하긴 친구가 급한 돈이 필요해서 은행에 가 몇 천만 원 대출을 알아봤더니 두말 않고 대출해 주더라고 했다. 심지어 연봉도 어느 정도 되고, 신용도 또한 좋아 대출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말에는 괜스레 기분까지 흐뭇해지더라고 했다. 얼핏 들으면 꽤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신용도가 하락하거나 신용불량자가 되는 건 한순간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소설가 현진건 선생의 '술 권하는 사회'라는 소설이 있다. 지금은 바야흐로 '빚 권하는 사회'이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빚 권하는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 대출 적합 대상자로 판명이 된다면 그게 얼마든 빚을 내는 건 쉽지만, 갚기는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