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보면 세상에는 참 무서운 것이 많다.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인 것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아닐까 싶을 때가 적지 않다. 생각해 보면 이건 우리 인간만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시간은 늘 등속운동을 한다. 폭염이라고 해서, 혹은 한파가 기승을 부린다고 해서 다른 때와 비교했을 때 더 느리게 흐르거나 또는 더 빨리 흐르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한 개인에게 있어 영광스러운 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존재의 근본을 흔들 만한 괴로움에 빠져 있다고 해서 그 시간이 더 더디게 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간들이 그렇게 느낄 뿐이다.
하루는 참 더디게 가는데 그렇게 모인 1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1년은 더디게 가는데 이것이 어느새 10년을 이루게 되더라.
어디서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어른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 역시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 어느 누구도 틀린 말이라고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말의 위력을 실감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럴 리는 없다. 앞에서 말한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 시간은 등속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또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도 그럴 것이며,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도 시간은 똑같은 속도로 흘러갈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한 것이다.
가끔 혈기왕성한 아들을 볼 때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만약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이삼십 년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지 않을까? 이삼십 년까지 굳이 거슬러 올라갈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고작 십여 년만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도 저 유명한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정도다.
종종 이 나이가 되도록 과연 나는 뭘 하며 살았나 싶은 생각을 해 본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세상은 지극히 공평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을 테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일정한 나이가 되기 전에는 자신 앞에 놓인 시간이 한정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듯하다. 때로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이 두 번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그 단순한 사실도 생각할 수 없는 듯 보인다. 왜냐하면 자신은 아직 젊음의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대중적인 인기도에 있어 최정상을 달리고 있는 한창 잘 나가는 연예인이 자신의 인기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젊음은 상대적이라는 말에 적극 공감이 간다. 여기에서 상대적이라는 말은 더 나이 든 사람들이 보다 더 젊은 사람들을 보는 시각의 차이에 근거하는 것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젊음의 가치를 느끼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 그 자체도 결국은 상대적이라는 말이 아니면 해석될 여지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묘한 것은 이런 논리가 성립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스물세 살밖에 안 된 아들을 보며 그 젊음을 못내 부러워하는 나 역시, 여든이 넘은 장인어른에겐 동경의 대상일 수 있다는 걸 내가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면 그걸 왜 생각하지 못하느냐고 반문하겠지만, 내 경우엔 명백히 그러했다. 아들의 젊음을 부러워할 줄만 알았지, 이제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을 장인어른의 눈에 비친 나 또한 인생의 황금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겠다.
일단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시간을 잡을 수 없는 것도 맞고, 엄밀하게 말하면 '나의 청춘'이 끝난 것도 명확한 사실이다. 청춘이라는 건 한창 젊고 건강한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봄철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라며 사전에 명시되어 있다. 아무리 인간 수명이 백 세 혹은 백이십 세 시대가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사십 대 중반 이상의 나이를 관통하고 있는 사람에게 더는 푸르른 봄날 같은 시기는 없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래서 가수 나훈아 씨가 그의 노래에서 가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다며 그렇게 애타게 외쳤던 게 아닐까?
사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나이가 든 사람이 하는 우격다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더러 있다. 어지간해선 젊은 세대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경우를 본 기억은 없기 때문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외치거나 '뭘 시작하든 늦은 나이는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죄다 나이가 든 사람임을 감안한다면,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한 게 아닐 수도 있다. 그 말은 곧 뭔가를 할 때 나이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결국, 지나간 청춘을 아쉬워해선 방법이 없다. 청춘만큼의 가치까지는 없더라도 남은 이 황금 같은 시간(누군가가 봤을 때에는 분명히 그렇지 않을까)을 쪼개어 쓰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