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뭐, 이런 비슷한 말을 조선의 10대 왕, 연산군이 했던 기억이 났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보다 섬뜩한 말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고작 몇 마디의 말을 잘못했다는 이유로 혹은 어떤 자리에서 한 마디의 말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낭패에 처한다는 건, 삶이 얼음판을 걷는 일과 다름이 없다는 말이 되는 것이겠다. 생각해 보라. 말의 그 끝이 죽음에 닿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무지막지한 일인지를 말이다.
원래 사람들 앞에서 말조심하며 살아야 하는 건 맞다. 아마도 요즘 세상 같다면 아무리 많은 것을 쌓아 올렸다고 해도 말 한번 잘못 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걸 무너뜨릴 수 있을 테다. 솔직히 말해서 잃을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나 잃을 것 밖에 없는 사람을 제외하면 누구든지 말조심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연산군 집권 당시 조정에서는 피바람이 끊이질 않았다. 그의 폭정이 명백히 잘못된 것이긴 하다. 사사로운 정에 치우쳐 나라 살림을 등한시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그는 우리에게 말조심의 중요성을 각인시킨 대표적인 사라미 되었다.
어쩌면 이와 궤를 같이 하는 말 중에 '침묵은 금'이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말이 아닌가 싶다. 사실 모든 금속이 높은 값어치를 지니는 건 아니다. 하다못해 흔해빠진 쇳덩이보다는 은이 더 값이 나가고, 은보다는 금이 더 높은 가치를 띠기 마련이다. 그 말은 침묵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최고의 미덕이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침묵만이 능사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금'과 같은 값어치를 지니는 침묵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침묵할 수 있다는 건 반대로 필요한 자리에선 꼭 입을 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어떻게든 하고 말겠다는 생각은 가장 위험한 것일 수 있다. 귀가 두 개이고 입이 하나인 것은 말하기에 치중하기보다는 타인의 말부터 먼저, 더 잘 들으라는 뜻이란 얘기가 있다. 살아가는 내내 어디에서든 익히 듣는 표현이지만, 실제로 그걸 실천에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누구라도 적절한 순간에 자신이 준비한 말을 하겠다는 게 이치에 어긋나는 건 아닐 테다.
항상 자신의 말을 하기에 앞서 반드시 귀부터 열고 나서 말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겠나 싶다. 물론 우리는 대체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아무리 듣는 시늉을 한다고 해도 타인의 말을 우리 자신의 말만큼의 값어치를 갖고 대하지 않는다. 대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귀는 닫아 버리고 입만 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코드, 즉 발신자와 수신자 간의 의사소통에선 순서상 귀가 먼저 기능을 해야 올바른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게 된다.
적어도 지금처럼,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너희는 모두 틀렸다고 하거나 그런 이유로 인해 지금부터 너희는 내 적이다,라고 선을 그어 버리는 건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 되고 만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하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사태가 어떻게 흘러가느냐 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한 가지 일을 두고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느냐 또 서로 다른 의견이나 입장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말이라는 게 그렇다. 내뱉은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기거나 또는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도 기억에 남겨두지 않는다. 들은 사람만 그 말을 속에 담아두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공론화가 안 되어서 우리가 모를 뿐이지 지금도 어딘가에선 말 때문에 누군가가 죽음을 당하거나 한순간에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잃는 일도 생길 것이다. 자나 깨나 불을 조심하려면 꺼진 불도 다시 살펴야 하듯, 일신의 안녕을 도모하려면 또 어느 한순간에 패가망신의 길에 이르지 않으려면 말을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테다.
결과적으로 오늘의 이 파국을 이끈 건 그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편협한 생각 때문에 우리는 '나'와 '너' 사이에 골을 만들고 말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골이 깊어져 회복 불능의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결국 귀만 닫아 버린 게 아니라 눈마저 감은 채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가 바로 소통하지 않는 사회를 만든 장본인인지도 모를 일이다.
살아가면서 서로 원활하게 소통하려면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것도 분명히 의미 있고 또 어떤 상황에서는 그렇게 해야 하지만, 그전에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습관부터 길러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단순하게 말만 조심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값어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