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적으로나 순서상으로 맨 끝 또는 맨 나중
‘마지막’이라는 단어의 사전적인 정의다. 굳이 수고를 들여 찾아보지 않아도 이 말을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금 보다 더 깊이 들어가서 보면 뭔가 심오한 뜻도 있을 테지만, 일단 ‘마지막’이라는 뜻을 떠올리면 사전의 정의에도 나와 있듯 ‘끝’이라는 말이 함께 떠오른다. 마지막이라는 건, 또 끝이라는 건 앞은 어찌 되었건 간에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했을 때 더 이상의 그 뒤가 없는 상태, 바로 그 지점을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고, 처음이 있다면 당연히 마지막이 존재하는 법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마지막이라는 건 그렇게 여기는 지점 이후엔 그 어떤 것도 없는 상황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모든 마지막은 항상 또 다른 시작점에서의 ‘처음’을 가져오곤 한다. 그리고 그 처음은 일정한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예외 없이 ‘마지막’으로 치닫는다. 그렇게 해서 그 어떤 하나가 영원히 끝이 나나 싶어도 그것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온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 보니 어딘지 모르게 논리적인 모순이 느껴진다. 그 마지막과 처음이 계속 돌고 또 돌게 된다면 ‘마지막’이라는 낱말도 ‘처음’이라는 낱말도 원래의 뜻에 충실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결국 실제로는 마지막이 아니란 뜻이 되는 셈이다.
그건 마치 우로보로스의 형상을 생각나게 한다. 꼬리를 삼키는 자라는 뜻의 우로보로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꼬리를 묾으로써 처음과 마지막이 연결된 하나의 원이 되는 형상을 하고 있다. 얼핏 보면 꽤 큰 뱀처럼 보인다. 더러는 용의 모습으로도 각인되는 우로보로스는 탄생과 죽음의 결합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뱀의 머리 격인 시작이, 자신의 꼬리 격인 끝(마지막)을 삼켜 버렸으니,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한 순환을 뜻하는 것과 같다. 물론 여기에는 탄생과 죽음을 끝없이 되풀이하게 되는 그 시간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자,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보니 ‘마지막’이라는 말에 대한 정의가 보다 명확해진 것 같다. 결국 ‘마지막’이라는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우로보로스처럼 우리 인생도 끝없이 돌고 돌기 때문이겠다. 하나가 끝나는가 싶으면 다시 또 다른 하나가 시작된다. 그건 전혀 다른 차원의 어떤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처음이라고 말할 수도 혹은 마지막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멀리 볼 것도 없다. 대체로 황금 같았을 그 기나긴 연휴가 끝이 났다. 언제 그런 날이 있기라도 했냐는 듯 우리는 다시 일상의 수레바퀴 안으로 이끌려 들어왔다. 마치 누군가에게는 세상이 다 무너진 것처럼 느껴질 수 있어도 몇 달만 더 버티면 다시 설 연휴가 다가온다. 그게 며칠이나 되는지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새로운 ‘시작점’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의미 있을 뿐이다. 물론 그 역시 쏜살같이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나갈 테다.
냉정하게 말해서 ‘마지막’은 없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우리의 감각 기관이 살아 있는 한은 그 어떤 것에서도 마지막을 목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사람의 죽음 정도일 것인데, 그것 역시 마지막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하다. 육체는 사라진다고 해도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은 꽤 오랫동안 우리의 마음속에서 반복적으로 재생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은 없다. 단지 그것은 새로운 어떤 것의 시작으로서의 의미도 함께 지닌다. 잠시 잠깐 우리 눈에서 사라진 것일 뿐이다. 이미 끝나 버린 듯한 뭔가가 어느새 새로운 시작점이 되어 또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아마도 영원한 마지막이라는 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나 당신의 ‘죽음’ 밖에는 없지 않겠나 싶다. 물론 이 역시도 과연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저 어딘가에 우리를 향해 마련된 또 다른 세상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