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게 인생

by 다작이

한창 재미있게 보던 TV 프로그램이 끝난다. 잠시 광고를 하는가 싶더니 이내 다른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해당 채널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백 여 개가 훌쩍 넘는 모든 채널에서 그런 일은 반복된다. 밤새 TV를 틀어 놔 본 적이 없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어쩌면 끝없이 되풀이되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어떤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하나가 연이어 시작되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의 이치가 아닌가 싶다.


길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다니고 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의 수에 차이는 있어도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는 사람이 있다면 반대편으로 가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어느 순간 그 길에 인적이 완전히 끊기는 때가 있을 순 있다. 그래도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라면 대체로 똑같은 모습을 보인다. 마치 그건 도로 위를 주행하는 차가 한 방향으로만 달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가는 차가 있으면 오는 차가 있고, 언덕을 넘어서 사라지는 차가 있다면 조금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차가 언덕 너머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도 이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지금처럼 가을의 한가운데에 있다 보면 어느새 겨울이 고개를 내민다. 일 하느라 정신이 없던이 한낮이 지나면 밤이 오고, 다시 그 밤은 이내 낮을 불러들이고 만다. 단 한순간도 끊긴 일이 없다. 우리의 시력이 살아 있고 또 시간의 영원성이 지속되는 한은 예외 없이 적용되는 규칙인 것이다.


어떤 한 가지의 일이 발생한다. 아무런 원인 없이 저절로 일어나 어떤 식으로든 진행된 뒤에 스스로 사라지는 일 따위는 있을 수 없다. 반드시 원인이 있었고 그 원인으로 일해 생긴 일이며 그 일은 이내 하나의 결과를 이끌어 내기 마련이다. 물론 그 결과는 어느 순간에 또 다른 일이 일어나는 원인으로 작용할 테다.


요즘 들어 길을 가다 보면 부쩍 갖게 되는 생각이 있다. 남녀노소의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보면서 누군가가 가고 나면 또 다른 누군가가 오는 게 인생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뭘 그렇게 당연한 소리를 하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당연한 소리 속에 진리가 숨어 있는 법이다. 군대 가서 고생하던 게 엊그제 일 같았던 아들이 전역하고도 벌써 네 달 반이나 지난 것만 봐도 그런 것 같다. 분명 녀석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심지어 녀석이 태어나기 전에도 나와 내 부모님은 있었다. 양자 간에 서로 원인과 결과로 작용한 건 아니라고 해도 세대가 자연스럽게 교체되는 걸 보면서 사는 게 별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보다 더 젊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나 싶을 때가 있다. 지금 내가 봐도 그렇게 좋아 보이는 그 시절을 마냥 손 놓고 보내버린 것에 대한 후회인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다른 데로 눈을 돌리면 또 다른 이들이 보인다. 어쩌면 이런 지금의 내 모습을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를 누군가이다. 물론 내 입장에선 그들이 전혀 부럽지 않다. 단 한 발자국도 그쪽으로는 가고 싶지 않을 테니까.


사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평등하지 않다. 직업에는 엄연히 귀천이 있고, 사람들 사이에도 계급이나 신분 따위가 명백히 존재한다. 만인이 법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이상적인 소리는 교과서에서나 진리로 통용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실제로 만인에게 평등한 게 딱 하나 있다. 바로 시간이다. 그 시간에 따라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시간이라는 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똑같이 흘러간다. 하루는 24시간, 1년은 365일, 단 1초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틀이다. 전 세계를 종횡무진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에게 단 1시간이라도 더 주어질 리가 없고, 아무 할 일 없이 시간만 소일한다고 해서 그에게 있던 1시간이 사라질 리 없는 것이다.


이러다 언젠가는 아들이나 딸에게서 손주가 태어날 순간이 올 것이다. 새로운 세대의 출현인 것이다. 그때가 오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 일만 남이 있게 될 테다. 하나의 별이 탄생하면 또 하나의 별이 지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아가는 이 인생이다.


흔히 사람들은 사는 게 뭐 있냐,라는 말을 곧잘 하곤 한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어쩌면 정답이 없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살아도 하루는 가게 되어 있고, 저렇게 살아도 어떻게든 흘러가는 건 마찬가지이다. 사실이 그렇다고 해도 마냥 물 흘러가듯 그렇게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만인에게 공평한 그 시간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내게 맡겨진 오늘이라는 하루를 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아니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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