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기차

by 다작이

새벽안개 헤치며 달려가는 첫 차에 몸을 싣고 꿈도 싣고......


꽤 오래전에 제법 히트를 쳤던 서울시스터즈라는 가수가 불렀던 노래의 시작 부분이다. 내 취향과 약간 동떨어지긴 해도 가사가 마음에 드는 데다 흥겨운 템포가 마치 아침의 시작을 연상시키는 것 같아 즐겨 듣던 노래였다. 물론 들을 때마다 드는 귀에 감기는 맛은 아마도 이 노래를 더 좋아하게 된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갑자기 이 노래가 떠오른 건 오랜만에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기 때문이다. 잠을 좀 설친 탓도 있고, 조금 더 자려니 어중간한 시각이라 지각을 면하려면 일찍 나서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 시각에 집을 나서는 건 대경선이 개통한 후로는 처음이었다. 그래 봤자 고작 20분 정도 차이인데, 그 짧은 시간이 주는 느낌은 어딘지 모르게 색다른 감이 있었다. 일단 하늘의 밝기부터 현저한 차이가 있었고,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머릿수를 헤아릴 정도였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이 있어서 최소한 오늘 하루는 내게 더 뜻깊은 하루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겼다.


이대로 역으로 가면 왜관으로 향하는 6시 24분 대경선을 탈 수 있게 된다. 대경선이 개통된 지난 12월 이후 처음 타 보는 시간대였다. 솔직히 이렇게 이른 시간에 열차를 타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겠다. 하루에 운행되는 열차 중 다섯 번째에 해당하지만, 내게는 저 노래의 제목처럼 첫차나 다름없다. 앞선 네 편의 열차는 사실상 그림의 떡이다. 지하철 운행 시각을 감안하면 있으나 마나 한 열차 편이다. 보다 더 일찍 일어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네 편의 열차를 이용하려면 택시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간대의 열차를 이용하려면 아침부터 꽤 서둘러야 한다. 그렇게 허둥지둥하다 보면 하루 온종일이 꼬이는 느낌이 들어 어지간해선 무리를 하지 않는 편이다. 가령 오늘처럼 잠을 설친 날이나 아니면 긴 연휴를 보낸 뒤인 오늘만큼은 일찍 출근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드는 날만 그렇게 할 뿐이다. 잠을 설친 것 때문인지 벌써 온몸에서 신호가 온다. 몸이 찌뿌둥한 것은 기본이고, 가만히 서서 열차를 기다리려니 정신까지 멍해지는 것 같다. 나이 오십이 넘으면 밤을 지새우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고 했던 누군가의 조언이 생각났다.


지금의 이 상태로 하루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단 생각마저 들었다. 뭐,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지고 만 일이니 되돌릴 방법은 없다. 딱 열일곱 시간 정도만 버티면 될 테다. 아마도 가장 안 좋은 시나리오는 하루 온종일 졸다가 보내는 일이 될 것이다. 그 긴긴밤도 지새웠는데 그까짓 낮 시간을 못 버틸 이유가 있을까? 정신이 멍해지는 가운데 어느새 내가 타야 할 대경선이 승강장으로 들어왔다. 평소 타는 시간대의 열차에선 빈자리가 아예 없었는데,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꽤 많은 자리가 비어 있었다.


이 열차는 아무래도 다른 시간대의 것들보다 더 조용했다. 요란하게 돌아가는 열차 바퀴 소리만 들릴 정도로 그 어떤 잡음도 들리지 않았다. 같은 칸에 탄 열여덟 명 중에 아홉 명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고, 나머지 아홉 명은 좌석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오늘이 월요일이기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느 때와는 다른 월요일이라는 게 사람들의 표정에서 알 수 있을 정도로 모두가 지쳐 보였다. 물론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도 퀭한 건 마찬가지였다. 마음은 나 역시 좌석에 깊이 몸을 묻고 20분쯤의 단잠에 빠지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피로를 달랠 수 있다면 몰라도 경험상 그런 쪽잠이 사람을 더 지치게 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두 눈을 부릅뜬 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몇 글자를 타이핑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차창 밖으로 풍광이 펼쳐진다. 사실 풍광이랄 것도 없는 모습이었다. 아직은 밝음보다 어두움이 더 깊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뭔가 아쉽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마치 거짓말처럼 주변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이제 막 하루가 깨어나려는 어떤 몸짓이 차창 밖으로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진기한 광경을 본 게 언제 적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무려 13년을 이렇게 다닌 길이었으니, 새로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풍광이었다.


늘 아침마다 생각한다. 하루 중에서 열차를 타고 있는 이 시각이 더없이 좋다고 말이다. 어느새 내릴 때가 되면 조금 더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그건 퇴근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그럴 수는 없다.


벌써 절반을 넘게 달렸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열차가 빠른지 모르겠다. 곧 있으면 하차를 살리는 방송이 나온다. 내겐 본격적으로 하루가 시작됨을 알리는 소리인 셈이다. 도착하기 전에 차창을 통해 보이는 저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을 조금 더 눈에 넣어두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드디어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좌석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던 사람들이 뒤척이며 내릴 준비를 한다. 더러 누군가는 아직 왜관인가 하며 다시 눈을 감고 좌석에 몸을 묻는다. 객차 안에 있던 사람들 중의 1/4 정도가 일어섰다. 물론 그 무리들 속에 나도 있다.


기차에서 내린다.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탈 사람이 다 타는가 싶더니 열차는 다시 출발한다. 어디선가 서울 시스터즈의 노래가 들리는 것 같다. 심지어 기적 소리마저 환청으로 다가온다. 순식간에 멀어져 가는 열차의 뒤꽁무니를 보며 대합실로 가는 계단에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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