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게 특별한 날이다. 지금 현재에 영향력이 있는 그런 특별함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일이 바로 오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억은 자그마치 3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버젓이 잘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한동안 집을 떠나 있어야 했다. 낯선 환경, 반갑지 않은 얼굴들 속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번도 나는 동의한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게다가 남자라는 이유로 좋다 혹은 싫다,라는 말을 할 새도 없이 나는 가야 했다.
그러고도 31년이나 지났으니 어쩌면 잊을 만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언제 어디에서 뭘 하며 살고 있건 간에, 해마다 오늘만 되면 어김없이 그 씁쓸한 기억은 재생되고 만다. 물론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그 일도 내겐 하나의 추억이었다. 그리고 그 일이 현재의 나를 있게 한 것 중의 하나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남자로서 당당히 군 복무를 마쳤으니 직업도 가질 수 있었고, 어쨌거나 결혼까지 해서 무탈하게 가정을 꾸리는 게 가능했다.
오늘도 그랬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휴대전화를 열어 날짜를 확인한 순간 잠시 기억 속에 빠지고 말았다. 누가 그렇게 하라며 시킨 것도 아니었다. 마치 명령이 주입되어 자동으로 반응하는 로봇처럼 몸과 마음이 저절로 움직였다. 삼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번 똑같았다.
무슨 전쟁터라도 아들을 보내는 듯한 부모님의 표정을 보며 드디어 끌려가는 날이구나,라며 실감했던 그날 아침의 착잡한 심정이 고스란히 이끌려 온다. 이른 시간에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당시에 사귀고 있던 여자친구였다. 더는 군 복무를 미룰 수 없어 가겠다고 결심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가는 마음이 편할 리는 없었다. 나중에 친구가 내게 너무 빨리 간 것 아니냐는 말을 했다. 그녀와 정식으로 사귄 지 고작 7개월 되던 때에 입대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입대 후 반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이별을 통보받았으니 친구의 말도 영 근거가 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원래 생각이라는 건 한 가지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 번 시작되면 어떻게 해서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법이다. 누군가가 옆에서 나를 부르며 끊어주지 않으면 한도 끝도 없이 가지를 치고 나가게 된다.
결국 31년 전의 그날을 떠올리는 건 나에게, 미처 붙잡을 수 없었던 그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과 같다. 생각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지금껏 만난 사람들 중에서 진심으로 나를 좋아했다는 것도 다 지나간 일일 뿐이다. 이미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있을 그녀일 테다. 그날 이후로 나는 두 번 다시 그녀를 보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가 나보다 먼저 졸업한 뒤부터라고 해야 맞겠다. 몇 다리만 걸치면 죄다 아는 사람이고, 기껏 넓어 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나 다름없는 이 좁은 대구에서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솔직히 한 번쯤은 마주치지 않을까 싶었다. 같은 학교를 다녔고, 근무처는 달라도 직종은 같으니 삼류 드라마에 나올 법한 우연을 가장한 마주침이 한 번은 있을 거라고 믿었다. 어려서 철이 없었다는 게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건 안다. 오죽했으면 1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도 입만 열면, 그녀를 놓친 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과오였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남자들은, 특히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남자들은 자기 부모에게 잘했던 여자를 잊지 못한다. 그런 점에선 정말 손색이 없는 사람이었다.
해마다 오늘만 되면 머리를 빡빡 깎고 입대하던 그때가 생각난다. 잊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잊히지 않는다. 내 인생의 갖가지 일을 통틀어 분명 군 복무의 기억이 강렬했던 건 맞다. 이런저런 일들도 많았고, 군대라는 특수한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겪으며 더 많은 걸 배웠다. 그때의 배움들이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에도 일조했다. 그러나 해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본심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어리석게 놓치고 만 그녀를 1년에 한 번씩은 떠올리기 위한 핑계가 아닐까?
그녀는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