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 무렵부터 슬슬 뉴스를 챙겨보곤 했다. 원래 TV 시청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전엔 뉴스 외에도 볼 만한 프로그램이나 관심이 가는 분야가 적지 않아 애써 뉴스 따위는 외면했다. 그런 게 아마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낱말의 생성 원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쪽(N), 동쪽(E), 서쪽(W), 그리고 남쪽(S) 등 각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에 대해 점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만났을 때 대화에 끼기 위한 목적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과 나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을 두고 최소한 독자적인 시각이 있어야 할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생각으로 뉴스를 보고 들은 지 벌써 십수 년이 지나고 있다. 뭔가를 하는 데에 그만큼의 시간을 들였다면 사실상 절반쯤의 전문가의 식견을 갖고 있어야 할 텐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나 자신의 무지함과 좁은 사고의 틀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에 못지않은 결정적인 장애 요소는 한쪽에 치우친 보도 방식과 경향 탓도 커 보인다. 가끔 그런 의심이 들곤 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고나 할까?
최소한 자유를 기치로 내건 현대 사회에선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아니 일어나서는 안 된다.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이 어찌 한쪽 면만 존재할까? 만약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그건 완벽히 잘못된 사회일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 흔한 동전에도 양면이 있듯 어떤 일이든 반드시 좋은 점은 물론 좋지 않은 점까지 공존하는 법이다. 그런데 요즘의 실상은 어떠한가? TV 뉴스에서는 한쪽만 보도한다. A에 대해서, 또 B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선 충분히 공평한 것처럼 보이나, 문제는 각각에 있어서 어느 한쪽 면만을 보도한다는 것이겠다.
이런 게 편파 보도일 테고, 편파 보도를 일삼는 언론사는 이념에 편향적인 집단이 되고 마는 것이다. 보도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잃은 탓이다. 그동안 뉴스는 질곡의 역사 속에서도 그 공정성을 잃지 않으려는 자체적인 노력으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과 믿음을 받아왔다.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다. 방송사마다 같은 내용을 보도하고, 그나마 있는 논평이라는 것들도 마치 앵무새가 의미 없이 사람의 말을 따라 하듯 반복 생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심지어 명색이 앵커라는 사람들도 감히 정치적인 논평을 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물론 그들도 자기 생각이 있는 건 당연하나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직업적인 사명감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꼴이나 다름없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언론을 틀어쥐고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한쪽에게는 칭찬 일색의 보도가 이어진다. 그들이 저지른 실수 같은 건 이슈도 되지 않는다. 실수를 통해 성장하는 게 사람의 가치라면 집단 역시 마찬가지의 속성을 가진 게 아닐까? 결국 그런 보도 행태는 그들에게 국민은 안중에 없는 안하무인의 태도를 갖게 한다. 반면에 또 다른 한쪽은 어떻게 해서든 죽이는 데에 골몰하고 있다. 명백한 잘잘못이 있는 그들에게도 잘한 점이 왜 없다고 믿는지 모르겠다. 그건 마치 한 사람이 탄 시소의 반대편에 올라타 놓고는, '넌 왜 그렇게 높이 올라가 있냐'라고 나무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실태가 이러니 일어난 일에 대한 보다 더 객관적인 정보를 얻으려는 나 같은 사람에게 뉴스는, 그 어떤 길잡이가 되지 못하고 있다. 가령 세상에 공표된 각종 부동산 정책이나 대출 규제 정책이나 혹은 금리 안정화 정책 등에 대한 그 명암을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건 유튜브 따위의 타 미디어 매체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아무리 시청자의 혜안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게 현대 사회라고 해도, 지금처럼 편파적이고 편향적인 보도를 일삼고 있다면 한 사람의 평범한 시청자로서 이만저만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언론은 죽었다.
철저히 비전문가적인 입장에서 감히 나는 이렇게 말하려 한다. 언제쯤이면 언론의 공정성을 회복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어느 채널을 돌리든 시청자가 믿고 들으며, 또 이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언론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