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학교를 옮겨야 한다. 그 때문인지 요즘 내내 심란하다. 이제 겨우 적응이 되어서 다니기가 수월해졌는데 벌써 떠나야 하나 싶은 생각부터 들었다. 가끔 현실적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일을 꿈꾸기도 한다. 한 곳에서 5년이고 10년이고 근무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누군가는 자신에게 맞는 곳에서 오래 근무할 수 있는 반면에, 또 다른 누군가에겐 힘든 여건 속에서 장기간 근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대체로 5년을 주기로 학교를 옮겨 다녀야 한다. 그 5년은 상한선이다. 1년 만에 옮길 수도 있지만, 아무튼 최대 5년을 넘길 수는 없다.
게다가 지금 내가 있는 학교는 관내에서도 규모가 두 번째로 큰 학교에 속한다. 이런 몇몇 학교들은 그 상한선이 4년으로 제한되어 있다. 본교에 온 지 4년을 꼬박 채우고 있으니 좋건 싫건 간에 이번엔 무조건 떠나야 하는 입장이다.
원래 나는 학교를 옮겨 다니는 걸 제일 싫어한다. 보통 내 정도 나이가 된 선생님들은, 또 승진을 생각하고 있는 선생님들은 어느 학교에 TO가 몇 명 나는지, 2년 동안 연구시범학교에 들어가는 학교는 어디인지, 보직교사(대개 업무부장교사)가 빈 곳은 어디인지를 훤히 꿰고 있다. 그런데 난 이런 쪽에 거의 까막눈이나 다름없다. 사실 앞서 말한 곳들은 시쳇말로 승진을 위한 점수를 쌓기 좋은 곳이다. 그런 정보 하나 없이 26년을 움직였으니 아직도 승진을 못하고 있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승진만 해도 그랬다. 사십 대 중반에 들어설 때도 전혀 뜻이 없었다. 일신의 편의만을 위해 직장을 다녔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저 학교에서 아이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에 만족했다. 또 학부모들과의 돈독한 관계 형성을 위해 애를 쓰기도 했다. 가장 등한시했던 건 동료교사들과의 관계 형성이 아니었나 싶다. 아마도 그들은 '그래, 넌 뭐가 그리 잘 났냐?'라고 생각할 것이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지만, 난 처음부터 동료교사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생각보다도 많은 적(?)이 내게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은 내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설마 나를 제외한 그 많은 사람들이 잘못되었을 리는 없으리라. 물론 그들도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을 게 틀림없다. 지금 있는 학교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아이들과 정말 잘 지내고 꽤 많은 학부모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만, 동료교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이미 오랫동안 단련되어 온 일이니 굳이 이제 와 답답할 것도 없다.
얼마 안 있으면 나름 정들었던 몇몇 동료교사들과 헤어져야 하지만, 그래봤자 한 손을 넘어서지 않는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그들도 날 대하는지에 대해선 자신이 없다. 할 말은 정말 많으나, 이쯤에서 화제를 돌려야겠다. 원래 인생이라는 게 그렇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해서 그 말을 다하며 살 수는 없다. 그런 논리로 따지면 상대방 역시 그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마련이다. 때로는 가슴에 응어리진 것이 있어도 안고 가야 할 때도 있다. 내 속 시원하려고 마구 쏟아내다 보면 누군가는 내 말 때문에 상처를 받게 된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워낙 많이 겪은 일이라 최소한 나는 그러고 싶진 않다.
며칠 전 교무실에 내신(학교를 옮기는 것) 서류를 제출했다. 학교 만기자는 총 여섯 군데를 희망할 수 있었고, 마지막 일곱 번째는 '하처가'였다. 이 말은 발령이 나는 곳이 어디건 간에 군소리 없이 가겠다는 뜻이다. 약간의 점수가 있으니 3 지망 안에서 결정 나지 않겠나 싶다. 조금의 이기심을 바라는 게 허용이 된다면 대중교통으로 통근이 가능한 곳에 발령이 나면 좋겠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