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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

145일 차

by 다작이

어제 퇴근 후에 학교의 동료 선생님 두 분과 저녁을 같이 먹었다. 한 분은 나와 같은 사무실을 쓰는데 고학년 과학전담을 맡고 있다. 나이는 열세 살쯤 차이가 나지만, 같은 공간에 있는 관계로 평소에도 대화를 많이 해서 그런지 꽤 편한 사람이다. 하루 일과의 절반을 그와 함께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남자다. 굳이 여기에서 성별을 밝히는 이유는 요즘 같은 시대라면 여자 선생님과의 자리는 괜한 오해를 사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급적, 아니 절대 그런 자리를 만들면 안 된다. 물론 같이 식사할 일이 생길 리도 없다. 만약 어떤 이유로 자리가 성사된다 해도 남자인 내 쪽에서 먼저 그 자리를 피하는 게 현명한 대처 방법이다.


다른 한 분은 체육전담을 맡고 있는 분인데 역시 남자다. 공교롭게도 그는 나와 교대에서 같은 과를 다녔다. 즉 같은 과 1년 후배였다. 학부 시절엔 그다지 깊은 친분을 가진 사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현직에 나와 무려 25년 만에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도 금세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원래 학교 선후배 사이는 1년 차이가 가장 어렵다. 나이는 나보다 세 살 어리지만, 이번에 교감 지명 연수까지 받았으니 곧 관리자가 될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이미 수필집을 펴낸 출간 작가였다. 이름 없는 작가들의 대부분이 1쇄에서 그치는 것을 감안했을 때 벌써 3쇄를 찍어냈다는 것만 봐도 상당한 글 실력을 갖춘 사람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특히 그는 학교에서도 나와 많은 얘기를 나누곤 했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할 수 없는 이야기, 이를 테면 글쓰기와 관련한 이야기는 그 선생님과만 나누게 된다.


우리말에 여자가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더는 시대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지금 같은 때에 그런 말이나 생각을 하는 건 다분히 위험하다. 꼰대 취급을 떠나 자칫하면 곤란한 형편에 처할 수도 있다. 아무튼 그런 낭설 따위는 우리와는 관련이 없는 말이었다. 남자 세 명이 모여도 충분히 접시가 깨질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만 자리였다. 평상시에 과묵하게 지내던 사람 셋이 모였다. 또 있는 듯 없는 듯 구석에서 웅크린 채 지내고 있던 남자 세 명이 만난 자리였다. 얼마나 할 말이 많았겠는가? 게다가 셋 중에 두 사람이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에 산더미 같이 쌓아놓고 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 말할 데가 없는 이들이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런 두 사람이 끼어 있었으니 이야기가 끊일 이유가 없었다.


각자의 집 얘기부터 학교생활에 대한 얘기까지 온갖 화제가 오르내렸다. 어찌 보면 조합도 묘했다. 한 사람은 승진 대기자였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준비 중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전혀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흘러갔다. 뭐, 우리끼리 얘기니까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나이가 오십이 넘으면 학교에서의 입지가 애매해지는 순간을 자주 느낀다, 꼭 승진 생각이 없더라도 미리부터 접지 말고 차근차근히 쌓아나가는 게 좋다, 나이가 더 들면 학부모들도 자기 아이의 담임이 나이 많은 걸 좋아하지 않는다 등등의 얘기들이 오고 갔다. 당연히 나 역시도 사십 대까지만 해도 느끼지 못했던 문제들이었다.


어딜 가서, 또 언제 이런 자리를 다시 가져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참 오랜만에 의미 있는 자리를 가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회생활이라는 게 대체로 그렇듯 일방적인 나만의 느낌인지도 모른다. 가장 나이가 어린 그 선생님이 불편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내가 그렇게 느꼈으니 상대방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또 그런 공감대를 기대해서도 안 되는 시대가 요즘이다. 그 순간의 감정과 느낌에 그냥 충실하면 될 뿐이다.


어쨌거나 어제저녁은 하고 싶은 말을 많이 할 수 있어서 유쾌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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