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일 차
요 며칠 새 하나의 주제로 깊이 고민했다. 다가오는 겨울방학을 어떻게 보낼까 하는 것 때문이었다. 가 버리고 나면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는 없는 법이니 후회하기 전에 보람 있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뜻이다. 이번 방학은 다른 때보다 비교적 긴 것 같았다. 12월 25일부터 2월 1일까지 가지 않으니 날수로 치면 무려 39일간이나 되었다.
게다가 2월 초의 닷새를 제외하면 다시 23일간의 봄방학에 들어간다. 겨울방학 때의 39일과 합하면 자그마치 62일이나 된다. 결코 허투루 보낼 수 없는 시간이다. 맞다. 넷플릭스나 티빙 등에서 내가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 등을 골라 정주행 하며 보내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두 달이나 되는 여가 시간을 그리 무계획적으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글을 써도 꽤 많은 양의 글을 쓸 수 있고, 바삐 서두르면 책 한 권도 거뜬히 쓸 만한 시간이다.
그저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노는 날로만 인식해선 곤란하다. 말이 씨가 된다고, 그렇게 단정을 지어 버리면 정작 방학이 되어도 온종일 뒹굴거리고 빈둥거리다 시간을 보내고 만다. 몸은 출근하지 않아도 난 내 몸을 속여야 한다. 마치 평소와 같이 매일 출근하는 것처럼 느끼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방학에도 매일 학교에 가기로 했다.
32년 지기는 오고 가는 다섯 시간을 줄여서라도 그 시간에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게 더 좋지 않냐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늘 그랬듯 통근 시간엔 글을 쓰면 된다. 원래는 공공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려고 했다. 생각해 보니 학교가 내겐 최적의 장소였다. 아이들도 없고, 더 좋은 건 선생님들도 없어 누구의 눈치를 볼 일도 없다는 것이다. 내가 있는 사무실(?)에 혼자 앉아 틈틈이 이사 준비를 하면서 글도 쓰고 하면 된다. 일단 듀얼 모니터를 쓰고 있어서 이런저런 작업하기에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은 이미 정했다. 크게 보면 세 가지고, 이를 더 잘게 쪼개면 다섯 가지다. 설령 다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최소한 절반은 마무리할 생각이다.
첫 번째로 오전 중에는 책 출간을 위한 초고를 다듬을 계획이다. 내게 할당된 오전 시간은 네 시간쯤 된다. 이미 완성된 초고니 잘 다듬기만 하면 된다. 수 차례 혹은 수십 차례 읽고 또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초고의 전체를 달달 외우다시피 할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말이 쉽지 만만하지 않은 작업이란 걸 모를 리는 없다. 게다가'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라는 속설에 대한 편견도 이겨내야 한다. 아무리 집중하고 또 냉정하게 판단하려고 해도 내 글에 대한 냉철한 시각을 갖기는 어렵다. 그런 약한 마음이 들지 않게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두 번째로 장편소설의 초고를 다듬기 전에 영화 두 편에 대한 작품 분석을 해 볼까 한다. 이 작업은 오후에 할 생각이다. 대략 세 시간 반 정도 들지 않겠나 싶다. 표면적으로는 두 편이지만, 실제로 보고 분석해야 할 영화는 모두 열한 편에 달한다. 해리포터 시리즈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다. 해리포터 여덟 편, 반지의 제왕 세 편을 다 보고 분석하려면 꽤 적지 않은 시간이 들 테다. 여기에서 말하는 작품 분석은 영화를 구조적으로 뜯어보겠다는 것이다. 판타지라는 장르의 특성을 어떻게 살려낼 수 있는지에 대해 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목표다. 영화에 대한 분석이 끝나면 두 영화의 원작을 읽으려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할 작업은 장편소설의 초고를 다듬는 것이다. 그 소설은 내가 쓴 유일한 판타지 소설이다. 아무래도 판타지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앞선 두 영화를 분석해 보려는 것이다.
막상 적어놓고 보니 과연 두 달 안에 이 많은 걸 다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부터 앞선다. 굳이 방학 동안 집에서 쉬지 않고 매일 학교에 가려는 이유다. 100% 달성하게 된다면 최상의 방학을 보낸 셈일 테고, 최소한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책 읽기와 소설 초고 다듬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완료했으면 한다.
이러니 방학이 오는 게 설레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