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일 차
날짜를 확인해 보다가 깜짝 놀랐다. 벌써 12월 16일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해도 이제 보름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시간이, 참 빨라도 너무 빨랐다. 말 타고 힐끗 산을 보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 정도라면 거의 빛을 타고 온 게 아닌가 싶었다. 늘 입버릇처럼 하곤 했던 말이 또 생각났다. Time flies like an arrow. 도대체 뭘 하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시간이라는 게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가기 마련이라지만, 뭘 하며 살았기에 시간이 이렇게 쏜살같이 흐르는 것도 몰랐나 싶었다.
보통 이맘때가 되면 저물어가는 2025년의 행적을 돌아보게 된다. 연초에 세웠던 계획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다. 물론 여기에서의 계획은 대체로 한 해 동안의 크고 작은 목표들을 포함한다. 또 몇 가지 목표들에 대해 이미 이룬 것과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을 뜯어보게 된다. 만약 이룬 것이 있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게 되었는지를 더듬어 봐야 한다. 이건 단순히 그 하나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일이 아니다. 성질은 달라도 한쪽에서 거둔 성공은 다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데에도 훌륭한 참고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대략 1년 전쯤에 세웠던 연초 계획을 돌이켜 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2025년을 맞이할 때만 해도 꽤 부풀어 있었다. 뭔가 내게 선물 같은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글쓰기에 있어서도 눈에 띌 만한 성장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쉽지만 상황이나 결과는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 매번 거기서 거기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마음먹는다고 해서 모든 게 뜻대로 될 리 없다는 걸,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라는 걸 모를 리는 없다. 다만 늘 그러했듯 한 해를 떠나보내야 하는 지금의 이 시점에선 그만큼 허망한 마음만 커져 갈 뿐이다.
연초에 난 큰 것 하나와 작은 것 둘, 모두 세 가지의 목표를 세웠다. 겸언쩍은 마음이 들어 그 목표들에 대해 여기에서 공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굳이 성과 보고를 한다면 큰 목표는 달성은커녕 근처에도 가지 못했고, 작은 것 두 개 중의 하나만 이뤘다. 사실 목표 자체만 놓고 보면 큰 무리가 없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내게 욕심이 지나쳤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1년이라는 긴 시간을 살아가니 충분히 부려볼 만한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나친 게 맞았다. 제대로 뭘 해놓은 것도 없는 처지를 감안한다면 많은 목표가 방향 감각을 잃게 하고 실천력과 추동력을 잃어버리게 한 것 같았다.
이루지 못한 큰 목표는 당연히 2026년의 몫으로 넘어갈 것이다. 작은 것 중에서 이루지 못한 목표는 이번엔 폐기하기로 했다. 더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내년의 활동 목표로 삼은 건 두 가지뿐이다. 큰 것 하나, 그리고 작은 것 하나. 욕심을 줄인다고 해도 나로선 더 줄일 수는 없을 것 같다. 만약 어느 것 하나를 버리면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그만큼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내게는 두 가지 다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탓에 어느 것도 버리지 않고 다 가져갈 생각이다.
큰 목표는 생애 첫 책 출간이다. 책을 출간한다는 게 쉽다거나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이제 안다. 다만 그런 세부적인 목표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알기에 설정했다. 설령 출간하지 못하더라도 글쓰기에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마침 원고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 다가오는 겨울방학과 봄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대대적인 수정 작업을 거칠 계획이다. 이미 한번 물먹은 일이었다. 완벽히 새로운 글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은 전망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꼭 출간하게 된다는 보장은 없으나 이번엔 근처에라도 가 보고 싶은 심정이다.
올해에 이룬 작은 목표는 바로 매일 글쓰기다. 사실 난 1년 동안 브런치에서 두 번이나 탈퇴했었다. 처음엔 '다작이'란 필명으로, 두 번째는 '오글이'로, 그리고 지금은 다시 '다작이'로 돌아왔다. 세 번 모두 한 번만에 합격했으니, 어찌 생각하면 이것도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무려 2700편이 넘는 글을 첫 활동 기간에 썼다. 어쨌거나 그때부터 계속 이어져 2년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을 써왔다. 맞다. 하늘이 두 쪽 나는 한이 있어도 썼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 만큼은 내가 자신 있게 밀어붙일 수 있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원래는 신년의 계획보다는 가는 해에 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할 테다. 그건 아직 올해가 보름 정도 남았으니 다음 기회에 쓸 생각이다.
계획이라는 건 괜스레 사람을 들뜨게 한다. 매번 계획을 수립할 때마다 얼른 신년을 맞이했으면 하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겠다. 아무튼 확실한 건 2026년도 다작이는 다작이 모드로 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