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일 차
어제 퇴근이 생각보다도 많이 늦었다. 관외에 있는 강동문화회관에서 본교의 소리빛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가 6시 반에 열리기 때문이었다. 물론 본교의 교직원의 자격으로 연주회를 관람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시계를 확인했다. 밤 11시 15분이었다. 상당히 늦은 시각이었다. 씻자마자 바로 잠에 들어야 다음 날에 출근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마침 그저께 같이 저녁식사를 했던 선생님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집에 오지도 못할 뻔했다.
본교의 소리빛 오케스트라는 대부분 3~6학년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다. 단원의 수는 70여 명쯤 되고, 저학년으로 구성된 예비 단원도 20여 명이나 된다. 물론 각 파트별 지도 선생님까지 합하면 단원의 규모는 그만큼 더 커진다. 음악적인 소양이 얕아 곡의 구성이나 단원의 전체적인 수준에 대한 냉정하면서도 객관적인 판단 등이 될 리는 없다. 그러나 올해에만 해도 각종 전국대회에 나가서 몇 차례 1등 하고 오는 걸 보면 실력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관현악단이지 않겠나 싶었다.
규모가 규모이니만큼 연주회가 열리면 관람객의 수도 엄청나다. 단순히 생각하면 아이들 연주회에 뭘 그리 많이 오겠나 싶지만, 온 가족이 동원되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 조부모가 동반되는 집도 숱할 정도다. 최소 300여 명에서 많게는 400여 명쯤 된다. 본교의 교원이나 내빈은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더군다나 뜻하지 않게 교육감까지 방문한 어제와 같은 경우에는 더 많은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다. 오죽했으면 올해 전입해 온 선생님들이 행사의 규모를 보고 깜짝 놀라기까지 했을까? 아마도 본교에서 실시하는 그 어떤 행사보다도 큰 행사일 것이다.
이번까지 나는 총 네 번을 참석했다. 작년까지는 내가 맡은 반 아이들이 하는 연주회다 보니 당연히 참석했고, 올해는 당당히 업무를 배정받고 갔었다. 내 업무는 저학년 예비 단원 통솔 및 관리였다. 아무래도 저학년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런지 인원은 스물한 명밖에 안 되지만, 세 명의 선생님이 배정될 정도로 요란하고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아이를 놓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잃어버릴 염려는 없다고 해도 행사 진행에 충분히 차질을 빚을 만한 일이 생길 우려가 있어서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서 없었다.
앞서 전국대회 다수의 수상 경력을 언급한 만큼 연주 기량도 상당한 관현악단이다. 물론 내가 가진 소양 내에서 판단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네 번의 연주회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감상했다. 전문 악단도 아닌 초등학생으로 이루어진 악단이 어떻게 그런 실력을 가질 수 있는지 궁금했다. 아마 지금껏 한 것 중에 어제의 연주회가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였지 않았나 싶었다. 좌석에 앉아 보고 있던 내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시쳇말로 총 러닝 타임은 2시간이 약간 넘었다. 그 많은 무대들 중에서 후반부의 세 무대가 특별히 더 기억에 남을 정도로 좋았다. 아를의 여인 전 악장, 영화 <레 미제라블>의 O.S.T. 모음곡이 좋았다. 하도 많이 들은 음악들이라 이미 닳고 닳을 정도로 귀에 익은 곡이었다. 생활 속에서 익숙했던 곡들을 들으니 그 현장감도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앙코르 연주곡에서는 졸업을 앞둔 6학년 단원들이 일일이 인사했다. 거기엔 내 제자였던 아이들도 네 명이나 있어서 가슴이 뭉클했다.
일신우일신, 일취월장이라는 말의 위력을 실감할 정도로 해가 거듭될 때마다 연주 실력이 발전했다. 연주에 있어서 눈에 띌 만큼의 실수가 보이지 않아 더 좋았다. 몸이 피곤한 하루였지만, 오랜만에 귀가 호강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