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기사의 예언

by 다작이

금요일 아침 출근할 때 모처럼 만에 택시를 타게 되었다. 비용이 만만치 않아 가급적이면 타지 않으려 하지만, 가끔 너무 시간이 안 맞을 때면 탄다. 물론 그래봤자 1년에 서너 번도 채 안 된다. 그나마 좋은 점이 있다면 잘 모르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택시 기사들은 직업의 특성상 일면식도 없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멀쩡한 사람부터 술 취한 사람까지 만나는 건 기본이고, 다양한 연령대의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대한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다양한 사람들의 면면을 비교적 잘 알고 있다. 그들로부터 온갖 얘기를 다 듣다 보면 마치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날 아침에 만난 기사도 장황한 얘기를 시작했다. 정치 얘기, 경제 이야기, 그리고 우리나라의 미래 등 숱한 주제를 넘나들며 이야기했다. 한참 동안 맞장구쳐 가며 듣기만 했다. 내가 별로 아는 것이 없는 탓도 있지만, 충분히 귀담아들을 만큼 가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말은 다음의 한 마디로 줄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더는 미래가 없다.


지금 그의 말이 맞다 혹은 틀리다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는 최소한 우물 안 개구리 신세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어쩌면 각양각색의 사람을 만나면서 세상의 민낯을 여실히 보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신세를 한탄하고 돌아갔을까?


그는 우리나라가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 책이라고는 읽지 않는 사람들, 월세에 살아도 벤츠를 굴려야 인간 행세하는 사회, 공동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기초 질서의식도 없는 사람들, 남이야 어떻게 되건 말건 간에 자기만 괜찮으면 그만인 사회 등등. 이야기는 으레 나이 든 사람들이 할 법한 말로 끝이 났다.


예전엔 이렇지 않았는데, 하며 그 오래 전의 과거를 향수하는 걸로 보면 시쳇말로 영락없는 개꼰대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냥 표면적으로 들으면 세상에 불만이 많은 한 택시 기사의 푸념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에 틀린 부분은 분명 없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내용, 모두가 지금 이 사회의 문제점으로 꼽는 내용들이었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단적으로 말해 어린아이에게 양복을 입혀 돌아다니게 하는 형국이 아닌가 싶다. 아직 치아도 완전히 자라나지 않은 아이에게 고기맛을 보게 한 꼴이라고나 할까? 사정이 그렇다 보니 올바르게 걸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큰 옷이 시야를 가리고 한 발씩 내딛을 때마다 바짓단이 발에 밟히는데 어떻게 제대로 걸을 수 있을까? 이도 시원찮은 아이가 그 질긴 고기를 어찌 씹고 또 소화해 낼 수 있을까?


정확한 용어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래도 우리는 평균의 함정에 빠져 사는 것 같다. 우리나라가 OECD 가입 국가 중 GDP가 몇 위라며 너스레를 떨어봤자 그건 나와는 지극히 관련이 없는 일이라는 현실 인식만 있을 뿐이다. 마치 그건 시험에서 자신은 50점을 받았는데 반 평균인 75점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격이다.


게다가 많은 매체에서 선진국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얘길 할 때마다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다. 마찬가지로 평균의 함정에 빠져 있을 뿐이다. 난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목전에서 수직으로 추락한 남미의 몇몇 국가들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또 이미 그 길에 들어섰다고 믿는다.


한때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헬조선'이란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 말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사회가 있다면, 그곳이 당장은 지옥이 아니라고 해도 지옥으로 가는 문이 열려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나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결빙점이 바뀐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