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는 왜 한국에 안 올까?

by 배대웅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국에서 하나의 사회 현상이다. 2005~2015년 교보문고에서만 그의 책이 약 89만 4천 권 팔렸다. 국내외 작가 통틀어 압도적 1위다. 특히 2009년 『1Q84』 한국어판 출간이 정점이었다. 예약 판매만으로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찍더니, SNS에는 책 인증샷이 폭주했다. 당시 힙스터라면 이 책을 들고 홍대 카페에 앉아있는 게 일종의 밈이었을 정도다.


이러한 인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노르웨이의 숲(a.k.a. 상실의 시대)』은 1989년 출간 첫해에만 30만 부 판매를 찍더니, 20년 넘게 매년 3만 부씩 팔리는 좀비급 스테디셀러가 됐다. 아마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 기록도 진작에 씹어먹었을 거다. 여전히 그의 신작만 나오면 그 즉시 수십만 부가 동나고 팝업 스토어까지 열린다. 어쩌면 하루키는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한 생존 일본인일지도 모른다.


인기만큼 큰 의문: 그래서 이 형, 한국에는 왜 안 옴?


그런데 이 대목에서 킹리적 갓심이 생긴다. 하루키는 한국 땅을 단 한 번도 밟은 적이 없다. 공식 행사든 개인 여행이든 마찬가지다. 요시모토 바나나,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온다 리쿠, 심지어 그 까탈스럽다는 오에 겐자부로도 다녀간 한국을 하루키만 안 왔다. 출판사들이 백지수표급 제안을 던져도 "스미마셍(정중)" 한 마디로 컷하기 일쑤다.


팬들 사이에서는 "사실 어젯밤 종로에서 국밥 먹는 거 봤다"라는 도시전설급 목격담조차 없다. 여행기 장인인 이 양반 성격상, 여행으로라도 왔으면 이미 『제주도에 대체 고기국수 말고 뭐가 있는데요?』 같은 책 한 권 뽑았을 거다.


그럼 하루키는 왜 가장 가까운 나라이면서 팬들도 많은 한국에 안 올까? 가설 몇 가지를 돌려봤다.


가설 1: “원래 은둔형이라 안 오는 거 아냐?” (X)


세상과 담쌓고 사는 아싸라서 그렇다는 추측이다. 하지만 이 가설은 틀렸다. 하루키는 유럽, 미국에는 곧잘 나타난다. 2014년 런던 사인회에서는 18시간 줄을 선 팬들을 위해 2시간 동안 사인을 해줬고, 스페인에서는 소녀팬들에게 볼 뽀뽀를 당하고 당황하기도 했다. 2025년 12월에도 뉴욕 북콘서트에 참석해 재즈 해설을 하고 왔다. 즉, 갈 만한 데는 다 간다는 소리다.


가설 2: “한국에 무관심해서?” (X)


영문학, 재즈 등 서구 문화만 좋아해서 한국을 무시한다는 추측이다. 이것도 팩트가 아니다. 하루키는 예전부터 "내 소설에 첫 관심을 보여준 외국"이라며 한국 독자들에게 감사함을 표해왔다. 작품에도 한국계 캐릭터(『1Q84』의 다마루, 『스푸트니크의 연인』의 뮤)를 비중 있게 넣고, 일본 정부를 향해 "피해자가 됐다고 할 때까지 사과해라"라고 돌직구를 날리는 소신파다. 이러한 태도는 그가 속한 전공투 세대의 반전·반권위 정신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가설 3: “한국 음식이 입맛에 안 맞아서?” (X)


예민한 이 양반이 향 강한 음식(터키, 중국, 한국 등)을 못 먹는다는 썰이다. 그러니까 세계적 대문호가 반찬 투정 때문에 나라 하나를 패싱한다는 얘기인데, 이건 좀 많이 짜친다. 하루키 정도 재력이면 일본에서 직접 셰프를 데려와도 된다. 즉 이건 안 오는 이유를 찾다 지친 팬들의 농담에 가깝다.


진짜 이유: "한국 방문이 지옥의 퀘스트가 될까 봐" (O)


그렇다면 남는 답은 하나다. 한국 방문은 하루키에게 '너무나 부담스러운 이벤트'다. 한번 생각해보자. 하루키가 공항에 나타나는 순간, 연예정보 프로그램 리포터부터 정치부 기자까지 다 달려들 거다. 유럽, 미국에서처럼 강연이나 사인회만 하고 싶어도 분위기가 절대 그렇게 안 흘러간다.


• 기자: “일본 군국주의를 비판하셨는데,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죠”,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요?”, “독도는요?”, "노벨문학상의 유력 후보로 꼽히지만 결국 못 받았는데, 심경이 어떻습니까?"

• 유재석: "일본에서 오신 하루키 자기님 모셨습니다. 조셉, 하루키 자기님한테 '두 유 노 한강?' 여쭤봐."

• 런닝맨 PD: "작가님 달리기 좋아하시죠? 이름표 떼기 한판 하시죠."


이렇듯 한국은 조용히 위스키 마시며 달리기하고 싶은 할아버지에게 너무 에너제틱한(이라 쓰고 '기 빨리는'이라 읽는다) 나라다. 한국 측에서 하루키를 ‘현대 일본을 대변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과대 포장하여, 문학 외적인 문제들까지 전방위적 견해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요컨대 "한국 가면 문학청년들이 아니라 마이크 든 기자 500명을 만날 것 같다"라는 공포가 그를 주저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이런 이유로 “차라리 안 가는 편이 낫겠다”라고 일찌감치 결론을 내렸을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안 올까?


팬들의 궁금증은 결국 하나다. “하루키, 평생 한국 안 오고 끝내는 거 아니야?” 정답을 미리 알 수는 없지만, 예측은 해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팔순을 바라보는 하루키가 앞으로 작품 활동을 몇 년 더 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오고 싶다면 빨리 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반대로 여태 안 왔으면 이제 영영 안 올 수도 있다는 뜻도 된다.


하지만 하루키 팬으로서 내 생각을 말하자면, “그래도 죽기 전에 한국은 한번 가봐야지” 하고 마음먹을 것 같다. 시기가 문제일 뿐 오긴 올 것 같다는 뜻이다. 그럴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있다. 하루키는 평생 큰 애착을 안 보이던 모교 와세다대학에 말년에 뜻밖의 행동을 취했다. 1975년 졸업 이후 별다른 언급도, 공식 행사 참여도 거의 없던 그가, 2018년 돌연 수천 점의 원고, 서적, 음반 등을 기증하면서 ‘하루키 도서관(정식 명칭은 국제문학관)’을 지은 것이다. 그에게 이곳은 단순한 기념관이 아니었다. 본인이 직접 "삶을 반영하는 장소"라고 표현한, 일종의 인생 정리 무대였다.


이 사례를 통해 하루키라는 작가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즉 그는 어떤 대상을 오랫동안 데면데면하게 대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극적인 방식으로 연결을 맺는 사람일 수 있다. 한국 역시 지금까지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언젠가 조용히 의미 있는 방식으로 방문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의 한국행은 사인회도, 기자회견도 아닌, 아주 하루키다운 방식으로 - 조용하고 간결하게 - 이뤄질지도 모른다.

하루키는 평생 별다른 교류가 없었던 모교 와세다에 2018년 소장품을 대거 기증하며 도서관을 지었다. 그의 한국 방문도 이처럼 극적인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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