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덕후의 삶

by 배대웅

나는 커피 덕후다. 밥 끼니는 걸러도 커피 끼니는 못 거른다. 과거에는 카라멜 마키아토나 프라푸치노 같은 당분 덩어리를 사랑했다. 그러나 다이어트라는 가혹한 현실 앞에 눈물을 머금고 아메리카노로 종목을 변경해야 했다. 그런데 웬걸? 쓴맛에 가스라이팅이라도 당한 건지 이 검은 물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이제 내 혈관에는 아메리카노만 흐른다. 출근해서 1잔, 점심 먹고 2차로 1잔, 저녁 입가심 1잔, 야근 시작하며 생존용 1잔, 새벽 원고 쓰며 멘탈 관리용 1잔, 도합 1일 5잔. 어머니와 아내는 오후에 커피 한 모금만 마셔도 "오늘 밤 다 잤네"라며 사시나무 떨듯 하지만, 나는 새벽 2시에 사발로 들이켜도 숙면이 가능하다. 아내는 내가 둔해서 그렇다고 한다.


나의 커피 연대기는 2000년,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된다. 고3 때 잠 깨려고 커피 마시는 친구들을 보며 "나중에 커서 먹어라"라는 부모님 말씀을 성경 구절처럼 따랐었다. 그런데 정작 성인이 되니 커피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세상엔 커피 말고도 마실 게 많았으니까. 예를 들면 소주라든가, 맥주라든가, 막걸리라든가… 신입생 OT의 막걸리로 시작된 그해 1999년은, 밀레니엄의 종소리를 맥주 거품과 함께 맞이하며 '술미상관'을 이뤘다. 아마 그 시절에 술에 커피까지 마셨으면 내 위장은 진작 빵꾸가 나서 조기 퇴갤했을 것이다.


당시 학생회관 층마다 있었던 자판기 밀크커피는 단돈 150원 - 이것도 100원에서 오른 거라며 선배들이 분노했다 - 이었다. 2학년 첫 중간고사 즈음, 가까스로 술독에서 기어 나온 내 눈에 커피가 들어왔다. 호기심에 한 잔 뽑아 마셔보니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어느새 나는 카페인의 노예가 되었다.


다만 그 시절 밀크커피는 지금과 이름만 같을 뿐, 성능(?)은 전혀 달랐다. 요즘 나오는 프리미엄 믹스커피들은 그야말로 인류 진보의 총아들이다. 그 시절 자판기 커피는 훨씬 텁텁했고, 특히 빌런급 뒷맛을 자랑했다. 한 잔 마시면 혀 깊숙한 곳에 이물감이 남아 물로 입을 헹궈야 했다. 그런데 요즘 커피는 깔끔한 단맛에 잔향도 매끄럽다. 기술혁신은 구글, 애플, OpenAI 같은 빅테크 기업의 전유물만이 아님을,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도 깨닫는다.


김연아가 광고하는 맥심 화이트골드는 '믹스커피계의 아이폰'이다. 20여 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존맛탱이다.


커피에 취미를 붙이면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글을 쓸 때 커피를 마시면 글빨이 잘 받는다는 것이다. 학생회 정책 간부였던 나는 자료집부터 선언문까지 온갖 글쓰기를 도맡았는데, 커피만 들어가면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이 탭댄스를 췄다. 특히 연말의 총학생회 선거가 극성수기였다. “에이 애들 선거가 뭐 얼마나 하겠어?” 싶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정권을 둘러싼 정파별 합종연횡과 권모술수가 여의도 정치 9단들도 찜쪄먹을 수준이었다. 약 2주간의 선거 기간엔 매일 날밤을 새우는 게 당연한 루틴이었다.


그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좁아터진 선거운동본부(동아리방) 가운데 긴 테이블이 있고, 벽면엔 구형 컴퓨터 세 대가 놓여 있었다. 밤만 되면 너구리 굴 마냥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물론 그때도 선진화된 21세기였으니 실내 흡연은 몰상식한 행동이었지만, 희한하게도 그 신사협정은 선거철만 되면 깨졌다. 나만 유일한 비흡연자로서 줄담배 대신 '줄커피'를 마셔대며 밤새 키보드를 두드렸다. 책상 위엔 재떨이의 담배꽁초와 내 종이컵들이 경쟁하듯 쌓였다. 한 번은 누가 내 커피컵에 담뱃재를 턴 줄도 모르고 원샷했다가 용오름을 뿜을 뻔한 적도 있다. 형, 누나들은 막내인 내게 "너는 어떻게 담배 없이도 그런 독한 글이 나오냐?"며 신기해했지만, 그게 다 카페인이 영혼을 쥐어짜 만든 결과였다. 이 카페인 의존형 집필 습관이 40대 중년까지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2003년, 내 커피 인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났다. 제대 후에도 정신 못 차리고 다시 학생회로 기어들어갔던 시절이었다. 학생회 간부의 하루는 아침 8시, 밤새 찍어낸 찌라시유인물을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선전전으로 시작된다. 복학 이틀째였나, 학생들이 웬 하얗고 커다란 컵을 들고 오는 게 눈에 띄었다. 저게 뭔데 떼로 들고 오는 거지? 며칠 지켜보다가 궁금증을 못 참고 후배에게 물었다.


“00아, 저 컵은 뭐야? 뭔데 저렇게들 들고 와?”

“저거 커피잖아요. 처음 봐요?”

“커피? 아니 무슨 커피가 저렇게 커?”

“이 형이 누가 복학생 아니랄까 봐… 요즘은 다들 저렇게 마셔요”

“헐…”


학교 앞의 '로즈버드'라는 신문물 가게가 범인이었다. 며칠 뒤 그 착한 후배는 복학생에게 최신의 커피 맛을 보여주겠다며 나를 그곳으로 인도했다. 메뉴판을 본 나는 두 번 놀랐다. 일단 카페 아메리카노, 카페 라떼, 카라멜 모카… 이게 영어인지 불어인지 감도 안 잡혔다. 커피는 원래 ‘밀크' 아니면 '블랙'의 이진법 아니었나? 십진법의 문명으로 순간 이동한 나는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두 번째 충격은 더 컸다. 제일 싼 커피가 한 잔에 2,300원? 자판기 커피가 150원인데? 그때의 문화충격이란 지동설을 처음 접한 중세인과도 비슷했다. 그렇게 처음 로즈버드 커피를 마셔보았으나 맛도 없었다. "커피 한 잔에 짜장면 한 그릇 값을 태워?"라며 분노하던 나는 졸업 때까지 150원 자판기 커피를 고수했다.

그 시절의 로즈버드 커피전문점. 당시 내 차림새도 가게 앞을 지나는 남자들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 후로 어쩌다가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는 먹어줘야 성에 차는 덕후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중세인이 종교개혁과 30년 전쟁과 산업혁명을 거쳐 근대인이 되듯, 나도 서서히 새로운 문명에 적응한 것 같다. 아니, 적응보다는 조련당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며칠 아메리카노를 안 마시면 그 씁쓸한 맛이 입에 맴돌며 금단 현상이 일어난다. 특히 스타벅스라는 자본주의의 맛, 전 세계 어디서나 공평한 그 탄 맛에 길들여졌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낯선 도시에 가면 중고 레코드 가게를 찾는다지만, 나는 구글맵을 켜고 스벅 위치부터 확인한다. 처음 취업해 대전에 내려온 2010년만 해도 도시 전체에 스벅 매장은 딱 2개였다. 지금은 한 블록에도 여러 개가 몰려 있다. 인구당 스벅 매장 수 세계 최고라는 갓한민국답다.


하지만 인생 최고의 커피는 의외의 장소에서 만났다. 2016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어떤 호텔에서 마신 커피였다. 유명 카페도 아니고 호텔 조식 서비스로 나온 흔한 커피였는데, "와, 이런 맛이 있구나" 싶었다. 이탈리아 커피의 진함은 한국의 쓴맛과는 달랐다. 쓰지 않은데 가볍지 않고, 향은 짧지만 또렷했다. 애써 돋보이려 하지 않는데도 깊은 신뢰가 가는 맛이랄까. 하긴 본래 이탈리아는 유럽의 커피 종주국이 아닌가. 이슬람에서 즐기던 커피를 1615년 유럽에 처음 들여왔고, 1884년 최초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만든 나라가 그곳이다. 전 세계를 씹어먹은 스타벅스조차 2018년에야 이탈리아에 매장을 낼 수 있었다. 실제로 이탈리아인들은 에스프레소에 물을 부은 아메리카노는 커피가 아니라는 부심이 있다. 그러니 이름 없는 호텔 커피가 인생 커피가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가끔은 그때의 학생회관 밀크커피가 떠오른다. 100원짜리 동전 두 개를 자판기에 넣고 버튼을 누르면, 덜컹거리는 소리 끝에 50원짜리 동전과 함께 나왔던 종이컵. 손바닥을 데우던 미지근한 온도와, 달달하지만 깔끔하다고는 할 수 없던 맛. 지금 보면 더도 덜도 없이 150원짜리 가치를 하는 커피였다.


그 시절 밤을 새우는 일도, 글을 써야만 했던 시간도, 애써 집중해야 했던 순간들도 대개 그 종이컵 근처에서 벌어졌다. 그러고 보면 그 커피는 취향보다는 긴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도구에 가까웠다. 원두나 로스팅을 따질 여유도, 브랜드를 고를 기준도 없던 시절이니까. 대신 시간이 있었고, 체력이 있었고, 무모함이 있었다. 한 마디로 젊으니까 가능한 일들이었다. 커피는 그 모든 젊음의 배경음악 같은 존재였다.


어쩌면 그 밀크커피가 그리워지는 건, 사실 커피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 설명 없이도 하루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몸, 별다른 계산 없이 밤을 새우던 패기, 그렇게 써버린 시간이 전혀 부담으로 돌아오지 않던 시절이 더 그리운 게 아닐까. 지금의 나는 더 좋은 커피를 마시지만, 그때처럼 마시지는 못한다. 아마 다시 그 자판기 커피를 마신다면 "에이, 맛없어"라며 인상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어떤 커피는 맛이 아니라, 그걸 마시던 시절의 나로 기억되어도 충분하니까.




* 예전에 발행했던 글을 아무말 스타일로 수정·보완해서 재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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