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의 설계도를 그린 사람들

이수만, 현진영, 서태지

by 배대웅

BTS, 블랙핑크, 뉴진스가 세계를 씹어먹는 시대다. 사람들은 이들이 거둔 화려한 성적에 주목하며 K팝의 현재에 열광한다. 하지만 정작 이 거대한 제국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흔히 K팝의 시작이라고 하면 1992년의 서태지나 1996년의 H.O.T가 거론된다. 이건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K팝 제국의 설계도는 훨씬 이전부터 그려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 자욱한 담배 연기와 미군 부대의 소음이 섞여 있던 이태원이 그 본거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미래를 내다본 한 제작자와 시대를 앞서간 두 천재의 엇갈린 운명이 존재한다.


미국에서 음미한 ‘자본의 맛’


시작은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에서 포크 가수로 활동하던 이수만은 돌연 미국 유학을 결정한다. 유학 명분은 컴퓨터공학이었지만, 정작 그가 미국에서 영감을 얻은 것은 MTV였다. 당시 미국은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가 "음악은 이제 눈으로 감상하는 것"이라며 전 세계를 가스라이팅하던 시절이었다. 이제 노래만 잘하면 짱먹던 시대는 갔다. MTV를 통해 비주얼, 퍼포먼스, 뮤직비디오가 결합하며 터져 나오는 폭발력을 목격한 이수만은 확신했다. “이건 된다. 한국에도 춤추며 랩하는 흑인음악의 시대가 온다.”


1985년 귀국한 이수만은 연예기획사 설립 준비에 착수했다. 월미도와 방배동에서 카페를 굴려 종잣돈을 모으는 한편, 미국에서 본 ‘스타 제조 공장’을 돌릴 시제품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동네에서도 랩하고 춤추며 노는 미국과 달리, 군사정권 치하의 한국엔 흥만 넘치는 아저씨들뿐이었다. 결국 이수만은 한국에서 가장 힙한 동네이자 날라리들의 성지인 이태원으로 향한다.


현진영이라는 프로토타입


그 무렵 이태원 춤꾼들의 메카는 클럽 문나이트였다. 미군 부대 옆이라 본토 스웩을 실시간으로 수입하던 이곳에서 이수만은 에이스를 물색했고, 이주노와 현진영을 발굴했다. 그리고 최종 픽은 훨씬 어리고 '노빠꾸' 재능을 가진 현진영이었다. 당시 16세였던 그는 그냥 춤꾼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미군 부대 흑인 형들과 부대끼며 그루브와 리듬감을 세포 단위로 세팅한 탈 한국급 괴물이었다.


여기서 K팝 역사상 가장 악명 높고 위대한 시스템인 ‘연습생 트레이닝’이 시작된다. 이수만은 현진영을 바로 무대에 세우지 않고 숙소에 가둬버렸다. 미국인 트레이너를 붙여 음정, 안무, 패션까지 회사가 통제하는 '제조 공정'을 국내 최초로 가동한 것이다.


1989년 이수만은 SM기획을 창립하고, 이듬해 1호 가수 현진영과 와와를 론칭했다. 현진영이 프론트맨을 맡고, 훗날 클론이 되는 구준엽과 강원래가 함께 춤을 추는, ‘1+2’ 체제였다. 물론 이 팀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다. 당시 뉴잭스윙으로 빌보드를 휩쓸던 바비 브라운이 그 모델이었다. 즉 현진영과 와와는 바비 브라운의 음악 스타일과 포맷을 그대로 이식한 팀이었다. 그럼에도 두 가지 점에서 기존 댄스음악과 달랐고, 그래서 대중들은 열광했다.


‧ 헤드셋 마이크 : 손이 자유로우니 안무가 미쳐 날뛴다.

‧ 백댄서의 멤버화 : 구준엽, 강원래 같은 괴물 댄서들을 같은 팀으로 묶어서 시너지를 일으킨다.


요컨대 지금 우리가 보는 K팝 퍼포먼스 - 헤드셋 마이크를 끼고 미친 듯 군무를 추는 - 의 원형을 보여준 셈이다. 하지만 동시에 1집 <야한 여자>는 음악적으로 한계도 갖고 있었다. 뉴잭스윙의 기본 구조는 가져왔지만, 결정적으로 박남정 류의 뽕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퍼포먼스를 넘어 음악에서까지 대중들을 압도하기에는 부족했던 셈이다.

바비 브라운의 <Every Little Step>과 현진영과 와와의 <야한 여자>


서태지의 환승과 혁명


현진영이 SM의 제작 공정을 충실히 따르는 동안, 또 다른 천재가 장르의 변혁을 준비하고 있었다. 록밴드 시나위의 베이시스트였던 서태지다. 메탈 키드였던 그는 밴드 멤버들이랑 지지고 볶는 게 짜증나서 댄스음악으로 갈아탔다. "컴퓨터(MIDI)는 배신 안 하잖아" 다만 미디 덕후로 흑화한 그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음악은 컴퓨터가 해주지만, 춤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 결국 서태지는 - 이수만이 그랬듯 - 춤꾼을 찾아서 이태원으로 가게 된다.


그렇게 만난 인물이 박남정의 백댄서였던 양현석. 양현석은 웬 어리숙한 애가 와서 “안녕하세여~ 저~ 춤 돔 가르쳐 주세여”하니 귀찮아서 거금을 불러 버린다. “3달에 150만 원” 하지만 집이 좀 살았던 서태지는 네고 한번 없이 입금 완료. 이렇게 쿨거래가 성사되나 싶었는데, 양현석은 돈만 받고 그대로 군대로 런을 쳐버렸다. 훗날 K팝의 두 거목이 될 서태지와 YG의 역사적 만남치고는 매우 짜친다. 몇 달 뒤 의가사 제대를 한 양현석은 양심에 찔려서 다시 서태지에게 연락했고, 그가 미디로 만든 몇 곡을 듣게 된다.


듣자마자 대박을 직감한 양현석은 서태지에게 말했다. “야 이건 무조건 팀으로 가야 돼(그러니까 날 좀 껴줘, 응?)” 제안을 받아들인 서태지는 3인조로 계획을 변경, 양현석은 서태지가 음악을 만드는 동안 리크루트에 나선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이태원의 에이스들이 서태지의 요상한 음악을 들어보고는 죄다 퇴짜를 놓았기 때문이다.


결국 양현석은 은퇴 직전의 문나이트 대선배 이주노를 섭외하게 된다. 이미 데뷔 기회를 여러 번 놓쳤던 이주노는 양현석이 말도 꺼내기 전에 "나 할게!"를 외치며 냅다 버스에 올라탔다. 데뷔 한 달 전이라 녹음도 못 해서 1집엔 이주노 목소리도 없었지만, 어쨌든 이로써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폭풍이 완성됐다.


현진영에게 바비 브라운이 있었다면, 서태지에게는 밀리 바닐리가 있었다. 서태지는 밀리 바닐리의 메가 히트곡 <Girl You Know It’s True>를 참고해 <난 알아요>를 만들고, 여기에 현진영과 와와의 1+2 체제를 그대로 탑재했다. 둘의 포맷은 비슷했으나 음악은 판이했다. 현진영은 뉴잭스윙을 가져오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멜로디 중심의 댄스가요였다. 반면 <난 알아요>는 리듬부터 달랐다. 드럼머신과 샘플링을 전면에 깔고, 랩을 중심에 박아 넣었다. 곡의 전개도 기존 가요처럼 A-B-후렴을 정갈하게 쌓지 않고, 힙합의 그루브로 밀어붙이는 형태였다. 한마디로 현진영은 춤이 새로웠고, 서태지는 음악이 새로웠다. 그리고 그 차이가 결국 대한민국을 멸망시켜 버린다.

밀리 바닐리의 <Girl You Know It's True>와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이수만의 반격, 그리고 잔인한 교훈


서태지가 자신이 깔아놓은 '1+2' 체제로 세상을 씹어먹자, 이수만은 배가 너무나 아팠다. 그래서 1992년 페르소나 현진영을 다시 호출해 2집 <흐린 기억 속의 그대>라는, 뽕끼를 쫙 뺀 정통 힙합으로 반격한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포텐이 터졌다. 이태원 춤꾼들 사이에서도 빛났던 천재 현진영은 차트를 씹어먹으며 SM의 전성기를 여는 듯했다.


하지만 승리의 샴페인을 따기도 전에 사달이 났다. 현진영이 마약 사건으로 구속된 것이다. 이건 그냥 가수의 일탈이 아니라, 이수만이 모든 걸 쏟아부은 공장 엔진이 폭발한 사건이었다. 갓 발매한 3집 앨범은 쓰레기통으로 갔고, 회사는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원석을 발굴해 천재로 키워놨더니, 그놈의 '천재성' 때문에 회사가 망할 판이었다.


검찰청을 들락거리며 수습에 매달리던 이수만은 K팝의 가장 냉혹하고 진화된 결론에 도달했다. “아티스트의 천재성 따위 믿지 않는다. 필요한 건 완벽하게 통제 가능한 시스템이다.” 이수만은 서태지를 보며 '10대들의 화력'을 확인했고, 현진영을 보며 '아티스트 리스크'를 학습했다. 이 두 빅데이터를 결합해 그는 완전히 새로운 종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천재 한 명의 독주가 아니라, 회사가 정교하게 조립하고 관리하는 '기획형 인간'들의 집합체였다.


1995년 현진영과의 계약이 끝난 이수만은 회사의 이름을 SM엔터테인먼트로 바꾼다. 그리고 이듬해 전원 10대로 구성된 최초의 기획형 그룹 H.O.T를 세상에 내놓는다. 이들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세 가지 공식을 탑재하고 있었다.


‧ 합숙 시스템 : 현진영처럼 사고 칠 틈을 아예 안 준다. 아티스트의 사생활을 저당 잡는 대신 리스크를 제로로 만든다.

‧ 캐릭터 분업화 : 서태지처럼 한 명이 다 해 먹으면 시장이 좁아진다. 비주얼, 댄스, 보컬로 역할을 쪼개서 팬들 취향대로 골라잡게 한다.

‧ 팬덤 종교화 : 10대들의 사회적 불만을 가사로 읊으며 팬들을 청취자가 아닌 강력한 지지자로 조직한다.


결과는 대성공. 이후 대한민국 가요계의 모든 제작자는 이 모델을 복제하기 시작했다. 오디션으로 뽑고, 연습생으로 굴리고, 그룹으로 묶어 캐릭터를 입히는 지금의 아이돌 제작 방식이 이때 굳어졌다.


정리하자면 K팝의 역사는 거대한 빌드업이었다. 이수만이 미국서 수입한 공장 라인에 현진영이라는 고성능 엔진을 얹었고, 서태지가 그 라인이 거대 자본과 문화 권력이 된다는 걸 증명했다. 그리고 현진영의 폭주를 지켜본 이수만이 야생의 재능들을 정교한 시스템 안으로 박제해 버렸다. 그렇게 이태원의 위험하고 힙했던 야성은 기획사의 차가운 규격 속으로 들어갔다. 이로써 K팝은 세계가 열광하는 거대한 산업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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