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일 차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소리소문 없이 살아가는 게 제일 줗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숱한 사람들 속에 섞여 있어도 굳이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삶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말을 해야 하는 순간에도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지내며 살아오진 않았다. 다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것 역시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는 요란한 삶을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는 사람들과 섞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누구보다도 좋아했으니 분명 태생적으로 조용한 삶을 좋아한 건 아니었다. 살면서, 아니 어쩌면 살기 위해서 바뀐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사회성이나 기본적인 인성에 대해 내가 가타부타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단체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피해를 줄 만한 그런 유형의 인간은 아니다.
뭐니 뭐니 해도 요즘의 화두는 '1인의 삶'이다. 예전처럼 더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삶을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다. 혼자서도 충분히 많은 것을 누리거나 혹은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즉 어떤 누구라도 자신의 영역에 들어서는 걸 원척적으로 봉쇄하는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 그 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가장 최소한의 교류만 유지한 채 사람들은 지내게 된다. 그 나머지의 시간과 에너지는 오로지 자신에게만 쏟아붓는다.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두고 과연 뭐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어쩌면 요즘과 같은 시대에 가장 현명하게 사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올 한 해 학교 생활을 하면서 참 많은 것을 느꼈다. 작년까지만 해도 담임을 맡았지만, 이번에는 전담교과를 담당하게 되었다. 누가 봐도 담임을 맡은 것보다는 올 한 해를 조금은 더 수월하게 보낸 것 틀림없다. 다만 담임교사와 전담교사라는 서로 다른 처지의 역할을 2년 동안 수행하면서 마치 동전의 양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건 어떤 것이 더 옳다거나 혹은 옳지 않다는 걸 뜻하는 것도 아니었고, 어느 것이 더 힘들다거나 또는 힘들지 않다는 걸 의미하지도 않았다. 그저 서로 다른 역할을 감당해야 할 뿐인 것이었다.
이미 시대가 변해 버렸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세상이 변하고 있을 만큼 모든 가치와 기준이 흔들리고 있는 세상이 오고 말았다. 진정 그것이 올바른 방향으로의 변화인지는 모르겠으나,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은 최소한 도태될 것을 각오해야 하는 세상이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거부한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있어도 그는 세상에 홀로 남은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했을 때 외로운 게 두렵지는 않았다. 그저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유령과 같은 존재가 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을 뿐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나이 차이가 적지 않은 사람들과의 어울림,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감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한 해였다. 그들과 잘 지내보려는 몸부림이 어쩌면 한낱 가당치 않은 욕심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은 그들과 전혀 소통을 못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교사로서의 최소한의 양심 따위를 운운하는 것도 고리타분하고 가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동안 내가 알아왔던 그 모든 가치와 직업적 윤리의식들이 한낱 쓰레기 같은 생각이었다는 게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하는 건 그 어떤 경우에도 옳지 않은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제 더는 완전무결하게 옳은 건 없는 세상입니다. 상식과 경우에 부합해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옳지 않은 것이 되고, 이미 그런 식으로 흘러가 버리면 그 어떤 것도 상식이 될 수 없는 세상이다. 또 옳다고 믿는 것을 내가 아닌 타인에게 한 번이라도 강조했다가는 시대의 변화도 못 읽는 한심한 꼰대가 되어 버리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야 어딜 가든 환영받는다고 했다. 나보다 삼십 년은 더 살았던 사람도 그 오래전에 체득한 걸 저는 이제야 깨닫게 된다. 결국은 1인 생활 시대가 정답인 세상이 되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야겠다고 문득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