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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뭐라고?

152일 차

by 다작이

12월이 되기 전에 내가 사는 곳에도 첫눈이 왔던 걸로 알고 있다. 정작 그 눈을 나는 못 봤다. 눈이 내렸든 안 내렸든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다. 그즈음해서 사람들의 들뜬 표정이 내 기억에 남아 있다는 게 중요하다.


우린 왜 이렇게 눈에 열광하는 것일까? 심지어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쯤 눈이 오면 화이트 크리스마스 어쩌고 저쩌고 하며 괜스레 설레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어쩌면 기독교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명절 중의 하나인 크리스마스에 우리까지 덩달아 마음이 설레고 뭔가를 꼭 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젖어서 살아가기도 한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다면 최소한 선물 정도는 주어야 할 것 같고, 이상하게도 우리는 그때쯤 서로 헤어질 때 뜬금없이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덕담까지 건네고 있는 형편이다.


솔직히 나는 이 말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 우리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기분이 들떠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엄밀하게 표현해서 성탄절은 이교도의 축제일이 아니던가? 예수의 탄생일이든 아니든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날에 왜 우리까지 들떠야 하는 걸까? 지금은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 전 세계에서 대중적인 축제, 즉 한 해를 마무리하는 대중적인 축제로 변질되었다고나 하나 그래도 내겐 먼 이방인의 축제일뿐이다.


그래서일까,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말이 들려올 때마다 심기가 불편하다. 게다가 도심지 곳곳을 크고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들로 도배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크리스마스인지 몰라도 고리타분하고 꽉 막힌 내겐 그저 이해할 수 없는 하루로 인식될 뿐이다. 이런 날 보며 가족들은 참 재미도 없고 낭만도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곧잘 한다.


마찬가지로 눈은 그저 내게 눈일 뿐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게 영 마뜩지 않다. 사실 눈은 어린 아이나 강아지가 더 좋아한다. 이제는 어쩌면 낭만을 찾기엔 너무 늦은 나이가 되어 버렸고, 순백색의 그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지난날을 성실하게 살아오지 못한 그 허물이 낱낱이 드러나는 것 같아 사뭇 부끄러운 마음마저 들기도 한다. 게다가 운전을 하던 때에는 그렇게 느닷없이 날리는 눈발이 반갑지도 않았다. 다소 이기적으로 얘기하자면 아마 이렇게 될 듯하다. 거실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들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마주친 눈이 더없이 낭만적이더라,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은 까닭 없이 우리를 들뜨게 한다. 갑자기 비가 오면 여기저기에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바삐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을 본 적은 있지만, 눈이 온다고 해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욕을 하는 사람을 본 기억은 없는 것 같다. 눈이라는 건 그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듯 보인다.


생각해 보니 내리는 흰 눈을 보면 누군가가 강렬히 떠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사랑했지만 지금 현재 같이 있지 않아서 떠오르는 사람도 있을 테고, 어떤 일로 소원해진 관계를 이참에 회복했으면 하는 사람도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런 그리움이 첫눈과 연결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첫눈이 오던 그날 내가 제일 먼저 연락한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떠올렸다. 아직도 내 마음 한편에 말랑말랑한 뭔가가 남아 있다는 게 믿기진 않으나, 나 역시 분명 눈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남들이 그렇게 열광하는 크리스마스에도 생각이 나는 걸 보면 내 마음도 많이 나약해졌나 싶었다.


어쨌거나 결국 우리는 눈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눈을 보며 떠오르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얘기가 되는 듯하다. 다시 하늘에서 머리와 손바닥 위로 눈이 떨어질 어느 날, 내가 내딛는 길 위에 눈이 흩날릴 때 눈 내리는 풍경을 찍은 사진과 함께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게 될 그 누군가를 생각하며 눈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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