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일 차
최근 몇 주 동안이나 휴일이면 아침 시간을 거의 날리면서 지냈다. 나름의 명분은 있었다. 평소에 부족했던 수면을 보충한다는 것이었다.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그렇게 더 자도 그리 오래 누적되어 온 피로가 단번에 날아갈 리는 없다. 결국 그 말은 조금 더 자나 덜 자나 피로도에는 별다른 변함이 없다는 뜻이었다. 수년 동안 익히 그걸 느껴왔는데도 여전히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더 자려 하는 고약한 습성이 발현되곤 했다. 이왕 칼을 뽑았다면 무라도 자르겠다는 심정으로, 오늘은 눈을 뜨자마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지인과 함께 오송에 가기로 한 아내가 어쩐 일로 이 시각에 일어났냐는 듯 멀뚱거리며 쳐다보았다. 자그마치 7시 반이 채 안 된 시각이었다. 평소의 주말이라면 한창 꿈나라를 헤매고 있을 시각에 돌아다니고 있으니 아내가 그런 반응을 보일 만도 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어야지, 하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부리나케 준비했다. 도서관 개관 시각인 9시에 맞추려면 미리 서두르는 게 좋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도 일이십 분 정도는 여유가 있어서 바나나 한 개, 사과 두 조각, 그리고 어제 먹다가 남은 단팥빵 1/3을 요기로 때웠다.
사실 너무 일찍 도착해도 도서관 출입문 앞에서 9시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시간 조절을 잘해야 했다. 괜스레 잘 보고 듣지도 않는 뉴스를 틀어 헤드라인 몇몇 개만 확인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마냥 여유를 부리고 있을 수는 없다. 양말을 챙겨 신으면서 뉴스를 들었고, 어제만큼 춥다고 했으니 오늘은 어제보다 더 두꺼운 내의까지 꺼내어 입었다. 긴 티셔츠를 내의 위에 입고 다시 목티를 걸쳤다. 목티 위에는 목도리를 둘렀다. 이제 몇 분만 더 있으면 패딩만 걸치고 나가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다시 시계를 확인했다. 여전히 8시 10분밖에 안 되었다. '밖에'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그리 이른 시각이 아닌데도 새벽같이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지하철로 이동하는 시간과 도서관까지의 도보 소요 시간을 합쳐도 족히 삼십 분이면 충분했다. 바로 나가면 밖에서 떨어야 하니 조금 더 있다가 나가기로 작정했다. 그때 문득 경구 하나가 떠올랐다.
The early bird catches the worm.
양질의 벌레를 잡으려고 아침 일찍 서두르는 한 마리 새가 된 기분이다. 설령 또 못 잡으면 어떤가? 벌레를 잡으려고 하늘을 날아다녔다는 것만 해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지하철에 오르자마자 주변을 둘러보니 몇 개의 빈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휴일임을 실감이라도 하듯 어지간해서는 없을 자리까지 비어 있었다. 그 덕분에 편하게 앉아서 갔다. 어차피 짧은 거리를 이동할 생각이었다. 십오 분만 지하철로 이동해 메트로 광장을 지나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에 갈 계획이었다. 자리에 앉는 즉시 휴대전화부터 꺼냈다. 다시 한번 정확한 시각을 확인하고 싶었다. 8시 25분이었다. 계산대로라면 문 앞에서 대기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마치 허겁지겁 달려와 떠나려는 기차나 버스에 오른 기분이었다. 한숨에 크게 고르고 나니 그제야 오늘 하루도 조용히 시작되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아직은 하루를 온종일 보내지 않았으니 알 수 없지만, 더 자고 싶은 욕심을 누르고 이른 시각에 뛰쳐나온 나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주말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시각에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것만 해도 그저 대견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