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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미련한 사람

155일 차

by 다작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만큼 미련한 놈이 또 있겠나 싶다. 누군가를 욕하려는 게 아니다. 바로 내 얘기다. 그러니 얼마든지 욕해도 되지 않을까? 어제 아침 일찍 도서관에 오자마자 몸에서 이상 증세를 느꼈었다. 몸이 안 좋으면 얼른 집에 가서 쉬는 게 정상이고, 그렇게 쉬어야 다음 날 그나마 괜찮은 컨디션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모를 리 없는데도, 어제는 꽤 미련스럽게 굴었다. 뭐, 그 정도면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있었지 않았나 싶었다.


아마도 공공도서관에서 맡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를 선점한 것에 대한 미련이 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앉은 자리를 물려줄 수 없다는 고약한 심보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래도 서둘러 집에서 나왔고, 그렇게 해서 명당 중의 명당을 맡았으니 자리에 대한 집착이 남았던 게 아닐까? 만약 꽤 맛있는 음식점에서 이름난 메뉴를 시켜놓았다면 어떤 일이 있든 먹을 만큼은 먹고 나와야 할 테다. 실컷 가서는 반의 반도 안 먹고 그냥 나온다면 그만큼 허망한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얼른 집에 가서 쉬어라. 한숨 자고 나면 좀 나아질 거야.'

뇌에서는 내내 그런 명령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래도 안 가냐는 듯 연신 콧물이 흘러내렸고, 이번에도 버틸 거냐며 온 갈비뼈를 쥐고 흔들었다. 평소 같았다면 즉각 반응했을 텐데 어제는 차마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조금 더 있어 보고. 점심 먹고 나면 좀 나아지겠지.'

애써 그렇게 외면하며 최대한 긴 시간을 버티고 또 버텼다. 정말 아닌 게 아니라 밖에 나가서 따뜻한 국물이 나오는 음식이라도 먹고 들어오면 한결 몸이 가뿐해질 것이라고 믿었던 모양이었다.


점심 메뉴로 고작 생각해 낸 건 라면밥이었다. 원래부터 가장 좋아하는 메뉴 중의 하나라 먹는 데에 거부감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따뜻한 국물이 꼭 먹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라면밥을 주문했다. 한두 숟가락 떠 입에 넣는 순간 그 특유의 기름기가 몸에 받히는 것 같았다. 마치 몸속에 기름을 두른 듯 그 맛있는 라면밥이 몸에서 겉도는 듯했다. 확실히 별로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감기몸살과 라면이라는 음식과의 상관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적어도 몸의 기운을 돋울 만한 음식은 아니었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 놓고도 그다지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고도 결국은 세 시간을 더 버티고 말았다. 도서관을 나서는 시각이 오후 4시를 약간 넘어선 때였다. 문을 닫는 시각까지 고작 1시간쯤 남아 있을 때였다. 잦은 몸살 기운으로 내내 집에서 버티다 기어이 두 손 두 발 다 들고는 그제야 병원을 찾는 사람처럼 주섬주섬 가방을 꾸렸다. 이런저런 계산이나 예측 따위는 하나도 적중하지 않았다. 조금 더 있어도 전혀 괜찮아지지 않았고, 따뜻한 국물이나 자판기 온음료도 달뜬 얼굴을 가라앉혀 주지 못했다.


집에 도착한 뒤로는 정신없이 잤다. 자다가 일어나 물을 몇 모금 마셨고, 다시 자다가 일어나 저녁을 먹었다. 이왕 자는 거 한 서너 시간이라도 푹 잤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눈을 뜰 때마다 확인해 보면 기껏 해야 한 시간 반 정도였다. 그렇게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 되어 있었다. 그 시각에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다시 잠에 들어야 했다.


가까스로 눈을 뜨니 오늘은 아침 8시 반이었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난 휴일이면 집에서 반드시 나오는 버릇이 있다. 그게 나도 편하고 집에 있는 가족도 편한 방법이다. 그렇게 해서 끝내 다시 공공도서관에 와 있다. 어제 만큼의 명당은 아니지만, 어엿이 한 자리를 꿰차고 앉아 이러고 있다. 어제보다는 몸이 나아진 것 같긴 한데, 여전히 온몸이 결리고 쑤시다. 몸이 아플 때 가장 서럽다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나는 게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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