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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사람들

150일 차

by 다작이

어렸을 때 아버지나 아버지 친구분이 종종 내게 선물로 주시던 게 있었다. 조금 큰 박스에 들어있는 것인데 안을 열어보면 십여 종의 과자들이 있곤 했다. 종합선물세트, 그 이름도 확실히 기억난다.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본 적이 없기에 지금도 그게 있는지는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국민학교 다닐 때 내가 받을 수 있었던 최고의 선물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일까, 가끔 그 종합선물세트가 그리울 때가 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그 과자 세트가 그리운 게 아니라 그 시절의 풍경이 그립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이제는 그런 선물을 내게 줄 사람이 없다. 그래도 아주 가끔은 내 돈을 주고라도 한 번씩 사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복불복이라고, 상자 안에 반드시 내 입맛에 맞는 과자들만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어도 열자마자 행복해지던 그 느낌만은 새록새록 떠오른다. 아침부터 웬 난데없는 과자 타령이냐고? 오늘은 종합선물세트라도 구경한 기분이 들었다. 눈이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모습들을 봐야 했다.


일단은 좋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늘 그랬듯 대구역으로 가려고 지하철을 탔다. 알맞은 타이밍,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마실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원래 나는 시긴이 임박한 상태에서 서두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항상 이삼십 분 정도의 여유 시간을 미리 계산한 뒤에 움직여야 불안감이 안 생긴다. 아침이라는 특성상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조금 더 자고 나서 시각에 맞춰 움직이는 게 아니라 가서 기다리는 한이 있더라도 일찍 나서곤 한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자마자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마침 빈자리가 눈에 띄기에 앉았다. 나란히 세 개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출근길에 이런 횡재는 드문 일이라 얼른 앉았다. 마침 오른쪽 끝자리가 임산부 배려석이라 한 칸을 띄운 채 앉았다. 혹시라도 그 자리에 임산부가 앉으면 서로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그 사람을 배려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아무튼 편하게 앉아 갈 있어 다행이라고 여기며 브런치 앱부터 열었다. 오늘은 뭘 쓸까 고민하던 내게 누군가가 글감을 던져 주었다. 생각해 보면 고마운 일이긴 하나,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보다 약간 뒤에 지하철에 오른 누군가가 임산부 배려석에 앉았다. 별생각 없이 봤더니 웬 남자가 사람 처음 보냐는 듯 나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마치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는 개라도 본 듯 눈을 감고 좌석에 몸을 깊이 묻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자리에 앉아 버린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삼 미터 정도만 더 가면 텅 비어 있는 경로석도 있는데 말이다. 예순이 채 되었을까 말까 싶은 남자였다. 그때 마침 임산부 배려석은 비워 놓아 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건지 들은 척 만 척했다. 여자라면 누구나 앉을 수 있어도 남자라면 어지간해서는 앉기가 어려운 그 명당이 탐이 났을 수도 있긴 했다.


임산부 배려석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일각에선 배려가 아니라 역차별이란 얘기까지 있다. 어쨌거나 나는 단 한 번도 그 자리에 앉아 본 적이 없다. 물론 앞으로도 앉을 생각 역시 없다. 그 자리는 처음부터 내게 없던 자리일 뿐이다. 그런 자리에 당당하게 앉아 있는 남자를 보니 심히 보기가 좋지 않았다. 심지어 일면식도 없던 그가 뻔뻔해 보이기까지 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그를 내가 나무랄 순 없는 일이다. 사실 나만 안 앉으면 그만이다.


그러고 있던 차에 이번엔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한 여자가 내 신경을 긁었다. 솔직히 이 문제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의견이 갈리곤 했다. 어깨에 맨 작은 백에서 그보다 더 작은 파우치를 꺼내 든 여자는 열심히 화장하고 있었다. 마침 그녀의 옆자리가 비어 있었는데, 무슨 장터에 전이라도 펼쳐놓듯 화장도구들을 늘어놓고 시작했다. 여간 불편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맨 얼굴이 그 짧은 시간에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걸 보니 한편 흥미로워 보이기도 했지만, 꼭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데에서 화장을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문제에 대한 지인들의 반응을 보면 대개 두 가지 정도로 의견이 나뉜다. 오죽하면 저러겠나 하는 것과 그래도 화장은 집에서 해야지 하는 생각이다. 문제의 요점은 공공장소에서 화장을 한다는 것이 과연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냐는 것이겠다. 나는 후자에 방점을 두고 싶다. 어떤 식이 됐든 타인을 시각적으로 불쾌하게 하는 것 또한 피해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한 남자는 삼 미터쯤 떨어진 경로석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한참 전부터 휴대전화 소리를 키워놓고 뭔가를 듣고 있었다. 보나 마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을 터였다. 뭘 보는지는 알 수 없으나, 들리는 몇몇 낱말들만 봐도 정치 관련 유튜브 영상을 보는 모양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대략 스무 살쯤은 많아 보였다. 슬슬 귀가 잘 안 들릴 나이라고 해도 저런 모습을 볼 때면 짜증부터 솟구치곤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쩌면 저렇게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줄어들까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잇값이라고 해야 할까, 어떻게 나이 드는 게 좋은지 새삼 느끼게 하는 광경이었다.


이런 류의 종합선물세트는 조금도 반갑지 않다. 아침부터 목격한 몇몇 불쾌한 모습들에 하루가 망쳐지지나 않았으면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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