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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권태기

149일 차

by 다작이

딱 요즘 같으면 정체불명의 낱말 하나가 떠오르곤 한다. 바로 '글태기'다. 글쓰기와 권태기라는 두 개의 명사가 만나서 생긴 합성어인 듯하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처음부터 있었던 말처럼 꽤 감쪽같게 느껴진다. 누가 보면 정말 그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찾아보나 마나 국어사전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검색해 봐도 나오지 않는 걸 보면 확실하다. 그 말은 곧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쓴다고 해도 최소한 표준어가 아니란 얘기다. 그렇다면 모름지기 글을 쓰겠다는 사람이라면 이런 단어를 글 속에 쓰면 안 된다. 가령 글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말속에선 언급이 가능하나 그 외엔 안 된다는 뜻이다.


한참 동안 글을 못 쓰고 있던 그가 드디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영미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 글태기 아니었어? 어떻게 그걸 극복해 낸 거야?"(O)
그는 매일 글을 썼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는 글을 뜸하게 썼다. 언제까지라도 지치지 않을 것 같던 그에게도 글태기가 온 것이다. (X)


난데없이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내게도 글쓰기 권태기가 제대로 온 것 같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런 상황에선 '글태기'라는 말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했으니 나는 길어도 '글쓰기 권태기'라고 쓸까 한다. 여기에서 권태기라는 말도 어딘지 모르게 어감이 그다지 편해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 보통은 슬럼프라고 표현하는 듯하다. 다만 좋은 우리 표현을 놔두고 영어(어쩌면 이미 외국어로 굳어져 버린지도 모르겠지만)를 굳이 쓸 필요가 있을까 싶긴 하다.


글을 쓰다 보면 권태기가 오기 마련이다. 사람이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있다고 해도 어떻게 매번 그 일이 좋게 느껴질까? 하다 보면 지칠 때도 있고, 또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건 아닌 것 같다. 냉정하게 진단해 보자면 아직 지친 것도 아니고 흥미가 식지 않았는데도 권태기가 찾아온 듯하다. 이렇게 불쑥 권태기가 찾아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극복할 만한 특단의 비책이 있을까?


요즘은 하루에 한두 편만 글을 쓰고 있다. 즉 한 편만 쓰고 그만둘 때가 적지 않다. 이건 나와 한 약속을 명백히 어기고 있는 셈이다. 다른 사람과 한 약속이라면 덜 하고도 마치 다한 것처럼 행세할 수 있지만, 나와의 약속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나 자신이 무서워서라도 꾸역꾸역 글을 쓰게 되더라고나 할까? 그런데 요즘은 왜 그렇게 글을 쓰기가 싫은지 모르겠다. 후다닥 한두 편을 쓰고는 멈추고 만다.


마음 같아서는 딱 한 편만 더 쓰면 '네가 좋아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겠다'라며 누군가가 내게 약속한다고 해도 더 쓰기 싫었다. 긴 시간은 아니나 나름 열심히 글을 써 보니 확실히 알게 된 게 있다. 글을 쓰기 싫을 때는 일단 쉬는 게 맞다는 것이다. 물론 그전에 써야 할 최소치의 글은 써야 한다. 일시적이나마 뭔가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면 몸도 거기에서 빠져나와야 하나, 그러진 못하고 발 하나라도 슬쩍 걸쳐 놓아야 한다는 게 영 마뜩지 않긴 하다. 그래도 별다른 도리가 없다. 물러났다가 다시 돌아가기 싫거나 돌아갈 수 없게 되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자, 이젠 결과를 말할 차례다. 며칠간 내게 찾아온 글쓰기 권태기를 아무래도 이겨 낸 것 같다. 비결 따위는 없다. 굳이 그걸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면 권태기를 이기는 유일한 힘은 글을 쓰는 데에서 온다. 매일 아침 그렇게 했듯 글쓰기로 아침을 열어가고 있으니 극복했다고 믿어도 되지 않겠나 싶다. 글쎄, 모든 문제에 대한 권태기를 그렇게 극복할 수 있는지는 모른다. 흥미가 다소 떨어진 그 어떤 일을 지속하면서 권태기를 극복한다는 게 논리적으로도 무리가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권태기를 느끼더라도 영영 손에서 놓지 않으려면 하던 건 계속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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