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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

148일 차

by 다작이

어제는 '토요일 오후'라는 글을 썼다. 그렇다면 오늘은 '일요일 저녁'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면 되겠다고 아침부터 내내 생각했다. 마침 지금 시각도 글의 제목에 딱 알맞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뜬금없이 진지한 모습으로 반성 모드에 돌입해야 했다. 사실 일요일 저녁에 마땅하게 할 만한 일은 이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려고 브런치에 접속하니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과연 오늘, 일요일 하루 동안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대개 보람 있는 저녁은, 편안한 저녁은 낮 시간을 열심히 보낸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축복이 아닐까 싶었다. 하루 온종일 어딘가로 열심히 달려간 것 같긴 한데, 도대체 어디로 그렇게 달렸는지 알 수 없었다. 이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는데 마치 결승점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다. 이건 단지 이번에도 마냥 지나가 버리고 마는 이 한 번의 일요일이 아쉽기 때문만은 아닐 테다. 따지고 보면 일요일이 이렇게 지나가도 다음 일요일은 오기 마련이니 그리 안달복달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단지 일요일 하루를 아무것도 한 일 없이 밍탕맹탕 보냈기 때문에, 푹 쉰 것도 아니고 뭔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닌 그냥저냥 한 하루를 보냈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라고 하기엔 그 대가가 너무 컸다. 어딘지 모르게 자꾸만 위기감이 들었고, 글을 쓰는 내내 괜히 좌불안석이 된 채 짙은 안갯속에 갇힌 듯한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잘못에 대한 후회나 반성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당당하게 생각한다.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스쳐 지나가는 일요일을 아쉬워하는 이 패턴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나 마나 나는 또 돌아오는 금요일이 되면 주말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두고 고민할 게 틀림없다. 이틀의 휴식일을 앞두고 토요일은 무엇을 하고 일요일엔 어떤 일로 하루를 채워갈지 작은 계획을 세우게 될 테다.


과연 그 이틀이 지나 일요일 밤이나 월요일 아침이 되면 지금과는 다른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릇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이다. 고작 이틀도 계획에 맞춰 보내지 못하면서 두 달이 약간 넘는 겨울방학과 봄 방학을 얼마나 보낼 수 있을까? 그렇게 큰소리치면서 세웠던 그 계획들 앞에서 과연 나는 떳떳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들었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다다른 것 같다. 그것이 생각이나 발상의 전환을 통해 이루어지든, 아니면 행동에 있어서의 실질적인 변화를 통해 이루어지든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뭔가 거창한 계획이나 변화를 꾀하려고 해선 안 된다. 맞닥뜨린 문제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는 걸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절실히 깨달았지 않은가? 어떤 문제건 간에 의외로 간단한 것, 가장 기본적인 것이 해결책이 되는 법이다. 물론 그 기본적인 것이 어쩌면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내 기억이 맞다면 지난주 일요일 저녁에도, 심지어 1년 전의 일요일 저녁에도 나는 똑같은 생각에 젖어 있던 걸로 알고 있다. 정말 나는 이 매번 되풀이되는 단순한 패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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