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운 연말

by 다작이

지금 최악의 컨디션으로 한 해의 끝을 보내고 있다. 몸 상태가 좋아도 모자랄 판에 졸지에 안 아픈 데 없이 새해를 맞이하게 생겼다. 이런 정신머리로 무슨 새해맞이 다짐 같은 걸 할 수 있겠는가? 사실 특별한 전조 증상도 없었다. 지난주 금요일쯤엔가 시작된 근육통과 감기몸살이 발단이었다. 학교도 갔다 오고 밤에는 그날의 운동 루틴까지 소화했다. 그 말은 곧 아무 문제 없이 하루가 무난히 마무리될 예정이라는 뜻이었다. 잘 나갈 때 조심하라는 말이 헛말이 아니었다. 그날따라 운동이 너무 잘 된다는 생각에 과욕을 부린 게 화근이었다.


참고로 올해 들어 감기몸살로 고생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참 튼튼하게 지내온 한 해였다. 오죽했으면 온 가족이 감기에 골골거리던 때에도 어떻게 감기에 한번 안 걸리냐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감기몸살이라며 며칠 끙끙대고 있으니 그야말로 온 집안에 비상 아닌 비상이 걸렸다. 자기들이 감기에 걸렸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내가 이러고 있으니 집 안에서의 마스크 착용령이 떨어졌다. 감기 증상이 없는 다른 가족들에게 옮길 가능성이 높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꽤 섭섭한 일이었다. 마치 초창기에 코로나 19가 대구경북 지역에 창궐하던 그때, 밖을 나가기만 하면 살벌한 눈빛으로 사람을 경계하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실 아내나 자식들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겁부터 집어먹고 있다는 걸 모를 리도 없었다.

"그 튼튼한 사람을 한 번에 쓰러뜨렸으니 얼마나 독한 감기겠어? 가까이 오지 마."

잠시 마스크를 깜빡 잊고 방을 나오면 눈치 아닌 눈치까지 준다. 모두 각자의 일이 있으니 이 시국에 감기에 옮는다는 게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란 걸 모르지 않지만, 집 안에 있으면 괜스레 섭섭하고 서럽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아플 때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게 최고라는 말은 그저 사전 속에서만 존재하는 말이 아닌가 싶었다. 고작 감기몸살 따위(물론 그들이 생각하기엔 그 위력이 어마어마한 것이겠지만)로 이렇게까지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시쳇말로 죽을병이라도 걸린다면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나로선 당연한 수순이었다.


일요일 밤에 종합 감기약을 먹고 푹 잔 덕분에 어제 비로소 제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아프다는 핑계로 사흘이나 운동을 못했으니 하늘이 두 쪽 나는 일이 있더라도 해야 한다며 피트니스 센터에 간 어젯밤, 준비 운동을 하고 랫풀다운을 막 시작할 때였다. 세 개쯤 당겨보니 아직 온전한 몸 상태가 아니었다. 이왕 쉬었으니 하루만 더 쉬자며 집으로 돌아와선 얼마 후 잠자리에 들었다.


난 꿈인 줄 알았다. 무슨 꿈인지는 몰라도 꿈속에서 난 내내 온몸을 떨어야 했다. 그런데 그것이 꿈이 아니었다. 방 안의 보일러를 가동하지 않은 건 물론 바닥의 전기장판에도 불을 넣지 않은 채 자고 만 것이다. 선이 꼽혀 있어서 으레 불이 들어와 있을 거라고 믿은 탓이었다.


결국 일어나고 보니 다시 감기몸살 기운에 온몸이 휘청거렸다. 당연히 마스크 착용령은 해제되지 않았다.

"벌써 며칠째야? 얼마나 독한 감기기에?"

그러면서 또 슬금슬금 피한다. 방학이라 내 방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 되지만, 날이 밝기가 무섭게 나는 밖으로 나오고 만다. 내가 있어서 다른 가족들이 불편하다면 자리를 피해 주는 게 맞을 것 같아서다. 물론 내 그 가상한(?) 마음도 추위를 비껴갈 수는 없다. 안 그래도 아파서 서러운 감정이 드는데 칼바람이 온몸을 두드려 패대고 있다.


뭔가가 되는 게 없다. 실컷 나아가는가 싶더니 다시 도지고 말았고, 빌어먹을 감기몸살 때문에 한창 들떠 있어야 할 이 연말연시에 푹 가라앉기만 한다. 그 흔한 버킷리스트 어쩌고 저쩌고 하며 다이어리 한 귀퉁이에 적을 정신도 없다. 아무래도 한 해를 아무렇게나 보내고 만 죗값을 이제 받고 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최소한 이틀 뒤에는 멀쩡한 컨디션으로 새해를 맞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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