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어중간하게 남아 유튜브에서 20여 분짜리 동영상 한편을 봤다. 굳이 분야를 따지자면 동기 부여 영상 정도가 되겠다. 일전에 아들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동기 부여 영상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체로 그런 류의 영상만 보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스스로 최면을 건다고 했다. 그러고 있는 시간조차 자신의 발전을 꾀하는 시간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마치 그건 다이어트가 목표인 누군가가 본격적인 체중 감량 실행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관련된 동영상을 보는 것까지 다이어트의 한 과정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
동영상 출연자는 개인적으로는 싫어하던 한물간 연예인이었다. 적절하지 못한 표현인 건 모를 리는 없다. 다만 개그맨이라는 그의 본업을 생각했을 때 사람들을 웃기지 못해 TV 브라운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면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큰 사고로 죽다 살아남은 경험, 수 차례에 걸친 요식업 사업의 도산 이력 등을 말하는 그를 보며 위화감이 든 건 왜일까? 비록 사람들을 웃기진 못했더라도 내 기억 속에 남은 그의 마지막 모습이 개그맨이라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그의 키워드는 인문학이었다. 사고와 도산 등의 시간 동안 그가 접한 수백 혹은 수천 권의 서적을 통해 삶이 변화되었다고 그는 당당하게 말했다. 역시 이질감이 들었다. 그는 내게 아직까지는 개그맨이었다. 물론 그의 깊은 성찰과 사색의 노력을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다. 어찌 보면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그가 말한 그 길은 내가 아직 가 보지 못한 길이다. 아니, 가 보지 않은 길이다. 어찌 머리로만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요즘의 지식인들 혹은 지성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을 거론하지만 그저 '인문학 하기'라는 유행을 흉내 내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미 지식과 학문의 상아탑인 대학에서 인문학이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배턴은 경영 및 비즈니스 업계로 넘어갔다고 한다. 엉뚱한 일이 아닌가 싶지만, 결론적으로는 인문학이 돈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 기억 속의 그 개그맨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따라가려는 시도가 인문학이고, 그래서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고 또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라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음미하지 않은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 소크라테스와 점심 한 나절을 함께할 수 있다면 가진 것 모두를 내놓아도 좋다며 생전의 스티브 잡스가 말했다. 기업의 CEO나 각계각층의 전문가 및 권위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소위 '인문학 하기'의 간증자로 나서고 있다. 나처럼 되고 싶다면, 목표를 이루고 싶다면, 그리고 큰 성공을 거두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인문학의 세계에 뛰어들라고 한다.
인문학이 돈이 되는 세상이 왔다. 더군다나 막대한 부를 축적하거나 최소한의 경제적인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고 싶다면 인문학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일단 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고 있으니 그만큼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누구던가? 적어도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이 아니던가? 그게 아니라고 해도 최소한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부를 쌓은 사람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왜 하필 이 시점에서 나는 윤편의 일화가 생각날까?
윤편은 장자의 천도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중국 제나라의 임금이 책을 읽고 있는데, 수레바퀴 깎는 신분인 윤편이 감히 권위에 도전한다. 읽고 있는 책의 저자가 이미 죽었다고 하자, 왜 그런 찌꺼기를 읽고 있느냐며 도발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임금은 윤편에게,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자신이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지 못하면 죽이겠다고 했다. 그러자 윤편은 수레바퀴 깎는 일을 들어 설명한다.
조금만 헐겁게 깎거나 조금만 빡빡하게 깎아도 수레바퀴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수레바퀴를 깎는 일이다. 그 일은 가히 말로는 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그걸 깎고 있는 자신의 손끝으로만 알 수 있는 일이다. 옛 성인의 책도 마찬가지다. 말로만 전달하려는 지식이 어찌 온전한 지식이라고 할까? 그러니 그들의 책은 찌꺼기일 수밖에 없다.
과연 윤편이 그 자리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또 저 일화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도 의미 없다. 다만 요즘 흔히 말하는 인문학을 대하는 자세나 마음가짐 등은 윤편에게서 배워야 하지 않겠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