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책을 읽다가 문득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읽는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그건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어쨌건 간에 읽을 만큼은 읽었다고 생각하고는 잠시 집을 나서보기로 했다. 이 야밤에 딱히 정해놓고 갈 만한 곳이 있을 리 없다. 핑계는 '운동삼아 동네 한 바퀴'였다. 동네 한 바퀴는 맞는 말인데, 중요한 건 운동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이왕 도는 김에 조금은 큰 궤적으로 돌자 싶어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벗어나 건너편으로 발을 들였다.
대로변을 벗어나 작은 소방도로 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창 걷던 중이었다. 거창하게 힐링까지는 아니어도 쉬자고 나온 길이었는데, 아무래도 난 천상 글을 써야 할 팔자인 모양이다. 어떤 한 곳을 지나고 있는데,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아무래도 큰 음식점에 딸린 주차장으로 보이는 곳의 입구에 세워진 나무 기둥 근처에 쓰레기 더미가 놓여 있었다. 평소에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쓰레기를 유기하는 모양이었다. 마치 그렇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관할구청에서 안내판까지 제작해서 붙여 놓았다. 아, 물론 주차장 주인이 사비를 들여 제작하면서 그렇게 인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쓰레기 다시 가져가세요.
그동안의 유기 현장을 찍은 몇몇 사진들이 버젓이 인쇄된 표지판 하단에 빨간 글씨로 적힌 글귀였다. 아무리 문해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도, 그곳이 쓰레기를 내다 놓는 장소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바로 내 눈앞에 보이는 쓰레기 더미만 해도 족히 열 가지는 넘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쓰레기를 무단투기했으면 저런 안내판을 버젓이 설치해 놨을까? 물론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실 저곳은 퇴근할 때도 간혹 한 번씩 지나치는 곳인데, 그때마다 늘 저렇게 쓰레기가 놓여 있는 곳을 보곤 한다. 게다가 오늘 본 양은 그나마 심한 날에 비하면 반의 반도 안 되는 양이다.
묘한 게 사람의 심리다. 저렇게 쓰레기를 방치해 놓으면 빈 종이컵을 들고 가던 사람이나 캔 혹은 페트병에 든 음료를 마시던 사람, 그리고 각종 쓰레기나 담배꽁초를 들고 가던 사람도 '여기 버리면 되나 보다'하며 마구 던져 놓고 가곤 한다. 아마도 그런 걸 두고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고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긴 뉴욕시(市)도 아니지만, 사람의 심보는 어디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한 번 지저분해진 곳은 그 어느 누구라도 지나가며 훼손해도 양심의 가책을 덜 받기 때문일 테다. 분명한 건 저 동네 사람이 한 소행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가령 나처럼 굳이 두 블록 너머에 사는 사람이 무겁게 쓰레기를 들고 와서 버리고 갈 리는 없을 테니까.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이기에 저런 몰상식한 짓을 하는지 무척 궁금했다.
버리는 놈(者)이 따로 있으면 치우는 분(人)도 따로 있는 법이다. 그런데 저곳은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가 보다. 저렇게 놔두면 저 자체만으로도 동네욕이 된다는 걸 모르는 건지, 단 한 번도 저기가 깨끗한 걸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저곳은 늘 저러했다.
양심은 도대체 어디에 두었을까? 이건 어쩌면 인간적인 편견이나 선입견일 수도 있으나 바로 건너편엔 절이 하나 있고, 또 바로 위에 교회도 있는데, 왜 저곳은 늘 저런 모습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절에 있는 분이나 교회에 있는 분이 치워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동네를 저런 꼴로 놔두고 무슨 영혼을 구원하고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고 하려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런 상태를 묵인하면서 살아가는 저 동네 사람들에게 교회와 절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뜻이다.
버려진 양심, 그 어느 누구도 치우지 않는 동네, 과연 저 동네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