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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는 날

by 다작이

내일 서울을 가게 됐다. 약간은 갑작스럽게 잡힌 약속이었다. 어차피 방학 중이다. 지금 아니면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다. 뭔가를 하고 싶을 때 신중한 태도가 필요한 건 사실이나, 너무 이것저것 다 재다 보면 행동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일단 저지르고 본다. 웬만한 방법보다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그럴싸한 그림이 되어 나올 확률이 높다는 걸 살아오는 동안 충분히 경험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내가 우겨서 만든 자리라고 할 수 있다. 내일 만날 두 사람은 모두 수도권에 살고 있다. 번거롭긴 하지만 이 경우라면 내가 움직이는 게 효율적이다. 게다가 흔히 우리가 하는 말 중에, '나중에 한 번 보자'라는 말은 몇 대 거짓말에 속할 정도로 실제 만남을 성사시키는 게 쉽지 않다. 각자 하는 일이 다르고 여유 시간도 제각각이라 시간을 조율하는 것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이 운영하는 단톡방에 미친 척하고 돌멩이를 던졌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보자는 말만 되풀이하다 시간만 갈 게 뻔했다. 개학하기 전까지 내가 서울에 갈 수 있는 날짜 몇 개를 콕 집어 단톡방에 올렸다. 한 분이 그중에서 가능한 날짜를 추렸고, 나머지 한 분이 일시를 확정했다. 시쳇말로 급 번개 오임이 결정된 셈이다.


우리 세 사람은 카가오톡 글쓰기 단톡방에서 만난 인연이다. 2023년 6월부터 활동했으니 무려 2년 넘게 그 인연이 이어져 오고 있다. 방장은 작년 여름에 서울에서 한 번 만났었다. 나머지 한 분과 나는 그 모임의 부방장 자격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 달에 두 번씩 회원들에게 글감을 추천받는다. 그렇게 해서 모인 3~5개의 글감 중에서 몇 가지를 골라 글을 써서 단톡방에 올린다.


더러 바쁠 때에는 글을 올리는 횟수가 적었지만, 어쨌거나 2년 2개월 동안 단 한 주도 빠뜨리지 않고 글을 써 온 곳이다. 흠이라면 거의 대부분의 회원들을 직접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가장 많은 회원이 있을 때는 50명에 달했다. 지금은 30여 명 글을 쓰고 있다. 내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때가 그해 3월부터였으니, 적어도 그 단톡방은 내게 지금까지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준 곳인 셈이다.


그러던 차에 모임의 리더들인 방장과 부방장 세 사람이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다. 설레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 또 글쓰기에 대해 얼마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게 될지 궁금할 뿐이다. 고작 그런 일로 비싼 돈 들여가며 굳이 서울까지 가야 하냐며 친구가 이해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만큼 내게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자리가 아닐 수 없다.


여행을 앞두면 으레 마음이 들뜨는 법이다. 코레일 앱에서 발권하고 나니 그 마음이 더 깊어진다. 설령 내일의 모임이 예상만큼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이미 한 약속을 되돌릴 수는 없다. 벌써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데굴데굴 구르다 눈이 뭐가 나오든 일은 진행되어야 한다.


부푼 마음을 안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다. 두 사람의 취향을 고려해, 그들에게 작은 선물로 줄 책이나 한 권씩 골라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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