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게으름_ ep 17
한국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지 모른다. 대학시절 런던 근교의 Jersey Farm 이란 지역에서 홈스테이를 한 적이 있었다. 지역의 이름 그대로 집에서 좀 걸어 나가면 말이 뛰어다니고 양 떼가 무리 지어 다니고 말 그대로 농장이었다.
내가 묶는 집에는 방이 여러 개 있었고, 내 옆방에는 이쁘장한 일본인 친구가 살았다. 매일 저녁 나와 일본인 친구, 홈스테이 맘 셋이 밥을 같이 먹었는데, 대화의 소재는 거의 ‘오늘 하루 어땠니?’였고, 그 소재가 떨어져 갈 때 즈음엔 각자의 나라에 대한 홈스테이 맘의 궁금증을 해결하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호호. 일본은 그렇구나. 참 흥미롭네. 그럼 너희 나라는? 홍콩에서는 어때?”
분명 나에 대한 서류를 미리 받았을 텐데, 아주머니는 나의 국적에 대한 개념이 잘 정립되지 않았는지 자꾸 나의 국적을 홍콩, 중국으로 바꾸곤 했다. 그나마 홍콩, 중국이라는 나라로 착각한 것은 양반일 정도였다.
“음. 거기는 중국의 일부니?”
나를 처음 본 날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홈스테이 맘이 던진 질문이다. 나의 국적에 대해 생소하게 느낀 것은 홈스테이 맘 뿐 만이 아니었다.
“너 중국인이야?”
처음 만난 마을 주민들이 가장 먼저 묻는 말이었다.
“그럼 너 일본인이야?”
중국인이 아니라고 하면 두 번째로 돌아오는 말이었다.
“저는 한국에서 왔고요. 삼성의 나라예요. 지송 팍의 나라이기도해요.”
당시 내가 생각해 낸 영국인을 상대로 한국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저 두 가지였다. 심지어는 저 대답을 듣고는 삼성이 일본 회사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다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뿜 뿜 하는 애국심으로 핏대 세워 삼성은 한국 브랜드임을 설파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은 첼시의 팬이라며, 라이벌 팀인 멘체스터에 속한 지송 팍의 나라에서 왔다는 설명에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어요.”
누군가 지리적으로 한국의 위치를 물을 땐 중국과 일본을 이용했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에 대해 흥미를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가뭄에 콩 나듯 “North or south?”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긴 했다. 처음엔 당연한 걸 왜 물어보나 했지만 나중에는 그렇게 물어봐 주는 사람들이 고맙기까지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정확히 말하자면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를 강타한 후, 다시 영국을 찾았다.
“너 한국인이야?”
처음 본 외국인들이 묻는 질문에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물론 중국인이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전에는 아시아인들을 구분하는 기준이 중국인과 일본인의 두 가지만 있었다면 이제는 한국인이라는 새로운 선택지가 생긴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을 설명할 때 더는 삼성도 박지성도 필요하지 않았다. 아니 설명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다. 한국인이라는 대답을 함과 동시에 너도 나도 강남스타일을 언급하며 말 춤을 추기 일쑤였다. 그리고 정말 믿을 수 없게도 길거리에서, 클럽에서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왔다. 외국인들이 그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싸이의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극진히 대접해주었다.
유럽 한 복판에서 한국 노래가 흘러나오다니. 그리고 더 이상 코리아를 설명할 때 삼성도, 박지성도 필요 없다니! 싸이의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모두 나에게 이렇게 우호적이라니! 아, 문화 콘텐츠의 힘이란!
UN 총회에서 연설한 BTS, 팔렘방 아시안게임의 폐막식에서 멋진 공연을 선보인 슈퍼주니어 등 많은 가수들이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제 아시아 국가들을 여행할 때 한국 노래를 접하게 되는 것은 크게 신기하지도 않을 지경이 되었다.
몇 년 전 동생이 태국의 한 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간 적이 있었다. 마침 태양의 후예가 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그 덕에 동생은 인기를 누리며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단지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한류 열풍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한국어를 굳이 배우지 않겠다던 일본에 살고 있는 친척 동생이 얼마 전 BTS 노래를 한국어로 부르는 모습은 꽤 충격적이었다.
한류 덕분에 한국인들의 타국 생활과 해외여행은 전 보다 더 나아졌음에 틀림없다. 적어도 한국을 설명하기 위해 더는 ‘삼성, 박지성’을 내세우며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어졌으니 말이다. 이 지면을 빌어 국위선양을 위해 오늘도 밤낮으로 힘쓰고 있을 한류 스타 및 문화 콘텐츠 제작자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제 여행을 나아지게 해주셔서, 더 이상 한국을 설명할 필요가 없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