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
퇴사를 하고 무작정 떠난 하노이 여행. 여행 동안 행복한 순간들도 많았지만, 유독 잊지 못할 순간이 있다.
여행 중도 아니고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서의 순간이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국으로 귀국하는 비행기 안이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기 1시간 전쯤 승무원들이 입국 카드를 나누어주었다. 처음 작성해 보는 것도 아니기에 별생각 없이 작성해나갔다. 이름, 생년월일, 성별, 여권번호, 그렇게 칸을 채워나가다가 순간 멈칫했다. 나도 모르게 옆에 앉은 언니가 내 입국 카드를 보지 못하게 가렸다.
나를 멈춘 칸은 '직업' 칸이었다. 2주 전에 퇴사를 했기 때문에 난 더 이상 회사원이 아니었다. '무직'이라 써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다가 나에게도 어엿한 직업이 있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다. 나는 이제 '주부'다. 하지만 펜을 든 손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망설이다가 결국 직업란을 빈칸으로 남긴 채 입국 카드를 제출했다.
그 누구도 내가 입국 카드 직업란을 비워둔 것에 대해 뭐라 하지 않았지만, 펜을 든 채 '주부'라는 글자를 뱉어내지 못하고 망설이던 순간이 내 일상을 종종 흩트려 놓았다. 그 순간의 나의 감정을 뒤늦게 짚어보았다. 그것은 '부끄러움'이었다. 나는 내가 주부인 게 부끄러웠나 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더 부끄러워졌다.
평소에 '주부'를 직업으로 사는 많은 여성들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다. 여타 직업과 달리 돈, 명예, 권력 등의 보상이 전혀 없어도 수십 년간 가정을 돌보는 일을 뼈 빠지게 지켜나가는 그들의 삶이 경이로웠다. 한 가정을 건강하게 세우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이 있을까 생각했었다. 주부로 사는 누군가를 만나면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데 받지 못하는 격려와 인정을 앞장서서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우리 엄마를 포함해서.
그런데 막상 내가 주부가 되고 나서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한다는 게 슬펐다. 생각했던 것보다 좀 이른 시기에 주부의 길에 선 것이기는 했다. 내 인생에서 주부로 보내는 시간은 내 아이를 낳은 후의 3년~5년의 시간일 것이라 계획했었다. 그 외의 시간에는 회사를 다니는 커리어 우먼의 이다정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계획치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게 인생이겠거니 싶다.
2017년 2월, 갑작스럽게 오른쪽 얼굴이 마비가 되었었고, 그렇게 되고 나니 참 복잡하던 세상이 단순해졌다. 모든 게 중요한 것 같았는데, 그때서야 중요함의 우선순위가 다시 매겨졌다. 그 단순함을 무기로 조금은 갑자기, 그래도 단호하게 퇴사를 했다.
내가 하는 일을 사랑했었다. 어린 시절부터 막연하게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일이었다. 스스로도 잘 몰랐던 나의 강점과 취향을 발휘하며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골이 좋은 전형적 촌사람이 첫 서울 살이를 홀로 감행하고도, 고시원과 옥탑방을 전전하면서도 그 일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인생에 한 번 뿐일 신혼을 주말부부로 보내면서도, 남편이 있는 충주 집 하나, 내가 있는 서울 집 하나, 이렇게 두 집 살림 유지비용으로 돈이 쪼들려도 이 일을 포기하지 않을 이유가 많았다. 내 입장에서 참 빈틈없이 이상적인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명명할 수 없는 이유들로 차차 메말라갔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무엇이 힘든지 이야기할 수 없었다. 버거웠지만, 모두가 견뎌가며 사는 정도의 고통이라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 버텼다. 밤마다 숨이 막히기 시작했고 나는 숨을 쉬기 위해 자주 울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오른쪽 얼굴이 멈춘 것이다.
힘들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게 난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세수를 하는 데 감기지 않은 한쪽 눈에 비눗물이 바로 들어가 눈물을 찔끔거리면서, 그렇게 처음 얼굴 반쪽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생각은 '고작 이 정도 힘든 것도 견디지 못하면 앞으로 뭘 할 수 있겠나?'였다.
거울 앞에 서서 미동도 않는 오른쪽 얼굴을 보며 천천히 인정했다. 두 달이 걸렸다. 나는 충분히 힘들었다. 이제 다르게 살고 싶다.
그래서 퇴사를 했다. 청년 취업률이 점점 낮아지는 이 난국에 말이다.
서울 집을 정리하고 남편이 학사장교로 군 복무 중인 충주로 이사를 왔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었다. 나를 메마르게 했던 것들에서 벗어나서 '남들'에 기준을 둔 가짜 내가 아닌, 하나님이 처음 나를 지으실 때의 모습으로, 가장 이다정다운 모습으로 살기 위해서, 그 방향을 찾고 싶어서. 그렇게 주부가 됐다.
그러니 내가 주부인 것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내게 있어 '주부'라는 직업에는 나다운 삶을 위한 도전, 마땅히 지켜야 할 것에 대한 단호한 결심이 담겨있다. 직업이 '주부'에서 평생 멈출지, 또 다른 곳을 향해 나아갈지 모르겠지만, 그 무엇을 하든 간에 부끄러워하고 싶지 않다. 결국 그 부끄러운 감정은 여전히 기준을 '남들'에게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끄러움'은 대게 타인의 시선이 있어야 성립되는 감정이다. 연고도 없고 지인도 없는 충주까지 와서,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을 타인의 시선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말아야겠다 생각한다. 혹여 그 시선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부끄러워하고 싶지 않다.
주부가 되어 끝이 없고 해도 티 안나는 여러 집안일을 하고 있지만, 확실히 회사를 다닐 때 보다 시간이 많아졌다(집안일 대충하는 사람이라는 뜻). 이렇게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을 가지는 게 내 인생 처음 일어난 일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느릿한 시간은 군인을 직업으로 할 생각이 1도 없는 남편이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제대 날까지다. 남은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나 역시도 다시 거친 현실로 복귀해야 할 것이다. 그때까지의 소중한 시간을 무엇을 하면서 보낼까 상상하다가 '해보는 시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담고자 하는 내용을 쉽게 담아내면서도 중의적인 깊음이 있는 제목을 좋아한다. 이다정다운 삶을 찾아가면서 다양한 영역의 실험을 하고 기록할 계획이었는데, 그 시도들에 '해보는 시간'이라는 제목이 딱 들어맞는 것 같았다.
마침 중의적이기도 했다. '해보는 시간'을 이미지로 구현하면 해(Sun)를 보는(Look) 나의 모습이 된다. 여행자에게 '해'는 시기와 방향을 알려주는 소중한 벗이다. 가장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을 찾는 과정은 여행과도 같아서 설레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종종 길을 잃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여정 안에서도 해가 뜨기에, 해가 있기에 다시 일어서 걸어나가고 싶었다.
동시에 '해본다'라는 동사가 주는 가벼움이 좋다. 해보는 것은 실패해도 된다. 그저 한 번 해봐도 되고, 심지어 그 한번 까지도 완료하지 않아도 된다. 평소에 해보고 싶었지만 환경을 이유로, 타인의 시선을 이유로, 잘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을 이유로 하지 않았던 것을 가볍게 해볼 것이다. 또 평소에 굳이 하고 싶지 않아 시도도 안 했던 것들도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 그 과정에서 이다정다운 삶의 조각들을 찾아내고 싶다.
우선 그 시작을 '주부'로 했고, 그 이후 이루어질 여러 색깔의 해보는 이야기들을 기록해 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