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기_해보는 시간
'해보는 나'의 첫 단추는 '그림'이었다. 작년 7월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결심은 멈춘 적이 없는데 행동은 줄곧 멈추고 있다. 즐기며 그리면 되지만, 그거 참 어렵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내 움직임을 막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사부작 거렸던 초기의 흔적들을 정리해본다.
2017년 7월 24일
_시작
사실 난 그림을 그리고 싶어한다.
오래된 마음이다.
수줍어 숨겨온 맘이기도 하고.
근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기록에 남기고 싶어 책상 위에 둔 다 읽은 책이 눈에 들어왔다.
글과 함께 그림으로도 남기려한다.
잘 못해도 그렇게 시작할 거다.
내일은 내가 그림과 편안히 지내도록 도와줄 선생님을 만난다.
약간 무섭고 그거보다 약간 더 설렌다.
2017년 7월 26일
_그림 수업
처음: 몰랐는데, 마침 그림 선생님 이름도 '다정'이라는 게 재밌었다.
'다정'이라는 이름을 같이 쓰고 있는 사람 중 개인적인 인연을 맺은 건 내 인생 처음 있는 일이다.
마침 다정 선생님도 동화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바로 무장해제됐다.
서로가 애정 하는 동화책을 가져와 자랑하는데 막 목소리 떨릴 정도로 신이 났다.
가운데: 나, 그림 선생님, 가죽 공예 선생님, 이렇게 셋이 같이 그림을 그렸다.
시선을 자신의 그림에 두고 여러 대화를 나누었다.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즐거운 대화가 이어지는 게 매력적이었다.
그러다 순간순간 모두가 그림에 빠져 조용해졌는데 그 잔잔한 공기가 참 풍성했다.
끝: 초록 들판에 노란색을 칠할 수 있고 파란 하늘에 분홍색을 칠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그래도 돼' 정신을 배웠달까. 스스로 묶고 있던 매듭 하나가 풀린 기분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보는 파란 하늘이 문득 분홍해 보였고, 행복했다.
2017년 7월 31일
_점토로 그리는 시간
나의 원조 그림쌤 구원이가 오랜만에 수업을 열어주었다.
구원이는 서울에서부터 커다란 백팩에 점토와 아크릴 물감을 바리바리 싸왔다.
늘 뭘 표현할지가 고민인데, 점토를 주물럭거리며 망설이다가 나는 노래를 만들고 싶은 구원이를, 구원이는 꽁냥꽁냥 이다정예성을 만들었다.
짠 건 아닌데 서로를 위한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는 게 참 이뻤다.
'누군가를 위한 무언가'가 내가 창작하는데 큰 동력이 됨을 느꼈다.
혼자 그릴 때도 그 동기를 안고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열중했고, 에너지를 다 쓴 우리는 결국 밤을 지새우며 나누는 수다는 고이 접어 날렸다.
창작활동은 숙면에 큰 도움이 된다.
혼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선생님에게 그림을 배우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 그림으로 놀기도 하면서 조금씩 그림과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 아직은 여전히 낯설고도 수줍다. 무섭기도 하다. 그래도 조금씩 더 좋아진다. 그런 연애 초기 같은 단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