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만들기_해보는 시간
나는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말을 뱉을 때는 사실 자꾸 눈치가 보인다. 마음이 콩닥거리며 소심해진다. 자신이 없어서 그렇다. '그림'은 내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 시간이 살아온 시간의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책을 정말 만들고 싶다.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와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엄연히 다른 말이다. 그냥 한 번 만들어보는 것으로 만족이 안 될 것 같았다.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이 내 직업이 되었으면 하는 꿈을 꾸고 있는 거다. 그림도 못 그리면서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다니, 무모한 게 맞다.
내가 다 큰 줄 알고 살았던 꼬맹이 시절에는 그림책은 유치한 애들이나 보는 거라 생각하며 일부러 글자 많은 책만 고집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때 도서관에서 어슬렁거리다 우연히 장 자끄 상뻬의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를 보았다. 한숨에 읽고 나서는 너무 좋아서 한동안 책을 안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 어떤 멋들어진 소설의 주인공보다도 그림책 속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에게 깊게 공감했다. 그 쉽고도 깊음이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꽉 채운 압도가 아닌 널널한 여지가 나의 상상을 이끌어냈다. 그렇게 어른이 되려는 초입에서 그림책에 빠졌다.
마음껏 착하고, 마음껏 따뜻하고, 마음껏 아름다울 수 있는 그림책이 좋았다.
대학교에서 공연영상을 공부했는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참 무거웠다. 너무 쉽거나 대놓고 착하면 재미없다는 소리를 듣기 쉬웠다. 그런데 그림책은 너무 쉬워도 되고, 대놓고 착해도 됐다(물론 만드는 과정이 쉬울 거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 지점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각 페이지마다 작품으로 느껴지는 예쁜 그림을 잔뜩 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그 뒤로는 서점에 가도, 도서관에 가도 그림책 코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해외여행을 가면 그 나라 언어로 된 그림책을 갖고 오는 게 나를 위한 낭만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다 보니, 나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피어났다.
지금부터 한 10년만 꾸준히 해보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꿈같은 기대가 있다. 그래서 시작한 그림 수업이다보니 취미처럼 즐기며 배우는 게 잘 안 됐다. 나의 오버가 더해져서 남 몰래 직업준비훈련처럼 수업 갈 때도 있는 것 같다.
마침 그림책을 좋아하는 그림 선생님을 만나서, 드로잉 수업의 결과물을 '그림책'으로 만들기로 했다. 혼자서는 시작도 잘 못하는 나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누군가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함께 독려해주고 자극해준다는 게 다행스러웠다. 그렇게 망설이던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부끄럽지 않을 만한 뭔가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 부담도 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스트레스받는 것치고는 너무 심하게 게으르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림에 대해 가볍지 않았다. 인생이 걸린 것 마냥 진지했다. 그 진지함의 무게가 나를 압박했다.
하지만 이 무게와 씨름하며 알아가는 것은, 무게가 가볍든지 무겁든지, 첫 시작은 첫 시작으로서의 의미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한 번 해보는 것에서 끝나든지, 한 번 해본 이후에 그 시도가 이어지든지, 결국 모든 시작은 '한 번 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었다.
두고두고 부끄러울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 거라는 다짐을 했다. '잘 해야지'라는 다짐에 익숙한 사람인데, 그와 정반대의 다짐을 하는 스스로가 웃겼고, 좋았다.
종종 감성 돋는 밤이 찾아오면 내가 언젠가 만들 그림책의 습작들을 끄적여보고는 했었다. 하지만 그 습작들을 다시 둘러보니 오그라들고 허접했다. 아예 새로 써볼까 싶었다. 하지만 흰 화면과 깜박이는 까만 커서를 멍하니 보고 있기 일쑤였다. 뇌 전체가 딱딱하게 굳는 것 같았다.
또다시 잔뜩 힘이 들어간 것을 느꼈다. '부끄러운 것을 만들자'라는 다짐을 되새겼다. 새로운 이야기를 처음부터 쓰는 것보다는 이 전에 써둔 것들 중에 고르는 게 부끄럽고도 쉬울 것 같았다. 그렇게 오그라든 손으로 설익은 습작들을 다시 뒤졌다. 두 개의 이야기로 좁혀졌는데, 하나는 '우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고, 하나는 '눈물'에 대한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가족에 대한 그림책을 그리려 했는데 그러기엔 내가 사람을 너무 못 그린다는 현실에 처절하게 직면했다. 결국 내 수준에서 비교적 그림으로 표현하기 쉬운 '눈물'에 대한 이야기를 골랐다.
그렇게 '뭐가 더 쉽나'를 기준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했다.
안 그렇게 생겨서 성격 되게 급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성격이 급했던 나는, 스토리가 나왔으니 대충 형태만 잡고 바로 더미북 작업을 시작하면 되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콘티를 만드는 것이었다.
문자 언어와 이미지 언어는 확연히 달랐다. '운다'라고 적은 문자를 이미지로 시각화 시킨다고 했을 때,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너무 많았다. 우는 모습의 사람을 그릴 수도, 눈물을 형상화한 패턴을 그릴 수도 있었다. 우는 사람을 그린다고 정하더라도 어떤 사람을 그릴지, 우는 모습 중 어느 모습을 집중하여 그릴지, 어떤 색으로 표현할지 등 다양한 고민의 가지가 계속해서 뻗었다.
특히 나처럼 그림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 없이 바로 비싼 종이 위에 선을 긋는 것은 비싼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것을, 콘티를 짜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달았다.
그림 선생님이 준 '무인양품 4컷 메모장'에 콘티를 채워갔다. 중증 선택 장애를 앓고 있는 내가 네모난 사각형 안에 힘겹게 내린 선택들을 그려 넣었다. 콘티로 시각화하는 작업은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 하는 나의 바람이 시각화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콘티를 최대한 세밀하게 그려서 완성도를 높인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그림도구와 표현 방법에 낯선 나는 세밀한 묘사를 할 능력이 없었다. 어떤 도구를 쓸 때 내가 원하는 느낌이 나는지 몰랐고, 어떤 색이나 표현이 지금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과 잘 어울릴지 머리로만 상상하여 구체화하는 게 불가능했다. 결국 엉성하게나마 콘티를 완성한 후에는 다양한 도구로 실험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색연필로만 표현을 해보려 했다. 손의 흔적이 느껴지는 텍스처와 잔잔한 색의 조화가 나의 정서와 잘 맞았다. 하지만 막상 색연필만 사용해보니 '완벽히 잘하려는 습관'이 극대화되었다. 워낙 세밀하게 표현이 되다 보니 실수하지 않으려고 조심스러워하다가 시간이 다 갔다.
그래서 수채화를 사용해봤다. 수채화는 내가 그리고 싶었던 선이 예상치 못한 굵기와 방향을 찾아 삐뚤어지고,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색이 다른 색과 제멋대로 섞여버렸다. 하지만 그런 실수들이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내 계획보다 내 실수들이 더 예쁘게 표현됐다. 그래서 좀 더 과감하고 자신 있게 그림을 채워갔다. 너무 어려워 보여서 긴장했던 도구인데 의외로 나랑 잘 맞았다.
색연필이 나의 원래 모습과 닮았다면, 수채화는 내가 되고 싶은 모습과 닮았다. 색연필과 수채화를 잘 섞어서 표현하면 나다운 표현이 가능하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오일 파스텔이라는 새로운 도구도 실험해봤다. 크레파스와 비슷한데, 수채화와 함께 사용했을 때 수채화를 오일 파스텔로 그린 라인 안에 가둬주는 표현이 가능했다. 색연필보다 색감이나 텍스처가 강했기 때문에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오일 파스텔로 표현하면 될 것 같았다.
이렇게 다섯 발짝을 뗐다.
내 걸음걸이로 다섯 걸음을 걸어보았다. 그래도 내 키는 넘는 길이였다(내 키가 좀 많이 작긴 하다). 겨우 다섯 걸음이어도 스스로를 넘어선 걸음들이란 생각이 든다.
느린 걸음들이었지만, 소중한 걸음들이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한참 남았고, 내가 끝까지 다 걸을 수 있을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나의 속도로 마지막 발짝까지 걸어낼 수 있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