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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Apr 11. 2018

내 손으로 쌓는 매듭들

마크라메_해보는 시간 

1_내 인생 첫 마크라메



손길이 느껴지는 무언가를 좋아한다. 삐뚤빼뚤해도 돼서 좋다. 만든 이가 지닌 손의 온기를 상상할 수 있어서 좋다. 천천히 만들어진 시간이 느껴져서 좋다. 그래서 마크라메가 참 좋았다. 
[마크라메: 아라비아에서 발생한 레이스로, 은 실이나 가는 끈을 나란히 하여 손으로 맺어 무늬를 만들거나 장식품이나 실용품을 만드는 수예(두산백과)]

마음으로만 좋아하던 것들을 직접 해보고 싶어 하는 중인데, 마크라메는 꼭 해보고 싶어서 오래전에 실도 사 놓았었다. 역시나 사놓고는 시작을 못했다. 덜컥 어렵게만 보였고, 그 벽을 넘을 만큼의 힘이 안 났다. 그런데 마침 작년 11월에 떠났던 치앙마이 여행의 첫 숙소 호스트 언니가 마크라메 클래스를 열고 있었다. 내가 가고 싶었던 치앙마이에서 하고 싶었던 마크라메를 배울 수 있다니 설렜다.



호스트 언니는 마크라메를 독학으로 해내셨다. 동기를 물었는데, 밤이 긴 치앙마이에서 심심해서 해봤다고. 심심함은 참 예쁘고 소중하다. 심심함을 가져오는 비어있는 시간이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힘의 원천이구나 싶었다. 하얀 실을 만지면서 하얗게 비워야 할 나의 것들을 떠올려 보았다.
호스트 언니의 코치를 받으며 작은 매듭들을 차곡차곡 쌓았다. 내가 바라던 큰 그림이 천천히 만들어졌다. 원했지만 해내지 못했던 것이 내 손을 통해 실체화되는 것을 보는 게 순수한 기쁨을 안겨주었다. 이렇게 해본 누군가가 해보려는 누군가에게 디딤돌을 놔줄 수 있구나 생각했다.



치앙마이에서 만들어온 나의 첫 마크라메는 우리 집 침대 위에 제 자리를 잡았다.




2_해보려는 누군가에게 : 
내가 연 첫 마크라메 클래스


충주에 내려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이 아파트 옆라인에 나와 예성이와 같은 대학을 나온 신혼부부가 있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하지만 처음 들어보는 낯선 이름들이라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렇게 넘어간 시간이 아쉬울 만큼 그 낯선 이름들과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그렇게 동네 친구가 생긴 뒤에 갖가지 재밌는 일들을 함께했다.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북살롱을 열었고, 월, 수, 금 아침마다 재즈댄스 학원을 함께 다녔다. 남편들이 집에 안 들어오는 당직 날에는 외박을 허락받은 십 대 소녀들 마냥 신이 나서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내가 배운 마크라메를 그 친구에게 처음 알려주었다. 내가 연 첫 마크라메 클래스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내가 누군가를 알려줄 수 있을 만큼 실력이 있지가 않았다. 나는 딱 한 번 마크라메를 만들어봤을 뿐이고, 내가 만든 문양 이외의 다른 문양의 마크라메는 어떻게 만드는지 1도 모르는 왕초보였다. 완벽주의자 성향이 강하고, 잘하지 못하는 걸 타인 앞에서 하는 걸 무척 두려워하기 때문에 마크라메를 알려달라는 친구의 요청을 듣고 걱정이 많이 됐다. 


동시에, 비록 나는 딱 한 번 해본 사람이지만, 해보고 싶다는 친구의 마음을 응원하고 싶었다. 충주 같은 작은 도시에서는 해보고 싶다고 해서 바로 할 수 있는 기회들이 가까이에는 별로 없다. 치앙마이까지 가서 마크라메를 배운 한 사람으로서 해보고 싶은 동네 친구의 마음이 더욱 소중했다. 결국 내가 만들어 본 것과 똑같은 마크라메를 친구에게 가르쳐주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내가 아는 것만큼만. (하지만 그것도 그 전날 새벽 3시까지 연습했다. 정녕 제 버릇 개 못 주는 걸까.)



사실 '가르친다'라는 동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시간이었다. 같이 연구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줄곧 까먹었고 허둥지둥 거렸다. 난관에 부딪혔을 때 멋있는 해결사 역할을 하지는 못하고 같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그렇게 친구는 나를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마크라메를 정복해갈 수 있었달까. 중요한 건 서로에게 재미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가르치는 이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그 이상의 것을 만들었다. 내가 가르쳐준 것을 새롭게 응용하여 친구만의 새로운 마크라메를 만든 것이다. 친구의 손길이 만든 새로운 문양들을 보며 손으로 만드는 것에는 그 사람이 녹는다는 것을, 그 고유한 매력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3_마크라메 해보는 나날들


친구에게 마크라메를 가르쳐 준 날을 계기로 마크라메가 손에 붙었다. 자신감도 조금씩 더 붙었다. 이제는 틈이 날 때마다 나뭇가지를 주워와 하얀 실을 가지고 사부작거리고 있다. 


1.


홀로 만든 첫 마크라메는 얇은 실로 만든 작은 마크라메였다. 가운데에 내가 애정하는 연분홍 천일홍을 꽂아 두니 제법 어울렸다. 처음 혼자 만든 것인 만큼 어설픈 느낌도 있었지만 내 눈엔 참 소중하고 사랑스러웠다. 만드는 내내 생각났던 고마운 사람이 있어 수줍게 선물로 전했다. 


©장에스더


맘에 들어 할까 반신반의하며 보냈는데, 다행히 수신자는 예쁜 미소로 기뻐해 주었다. 나는 마음이 담긴 고퀄 인증샷을 선물 받았다. 내가 직접 만든 무언가를 선물하는 기쁨은 무척 컸다. 선물 자체뿐 아니라, 그 선물을 만드는 시간 안에 내 진심을 가득 담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종종 내가 만든 것을 선물하는 사람이고 싶다. 


2.


마크라메 작업 공간은 내 책상 위다. 스탠드 목에 걸어두고 작업을 한다. 제법 단순노동이기 때문에 한 켠에는 보고 싶은 무언가를 틀어놓는다. 요즘은 빨강 머리 앤을 정주행 중이다. 



그렇게 완성한 두 번째 마크라메는 안 해 보았던 새로운 문양들을 시도해보았다. 작은 매듭들이 쌓여서 만드는 문양들이 참 곱다.



3.



마크라메의 이름이 ‘마크라메’인지도 모르고 좋아했던 옛날부터 무지 갖고 싶어서 여러 마크라메 행잉 플랜트를 장바구니에 넣어두었었는데 틈틈이 마크라메를 연습하다 보니 왠지 내가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허둥지둥 거렸지만 결국 만들었다. 갖고 싶어 했던 걸 사지 않고 직접 내 두 손으로 만들어내니 무척 뿌듯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다양한 영역에 도전하고 싶었는데 마크라메에 대한 도전이 순항 중이어서 기쁘다. 앞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될 내 손길의 결과물들이 기대된다. 즐겁게 만들어서 적절히 채우고, 풍성히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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