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가꾸기_해보는 시간
중학생 시절부터 대학생 때까지 10년 이상을 기숙사에 살았다. 공동을 위한 질서와 배려가 무엇보다 중요한 공간에 나 자신을 끼워 맞춰 살면서, 개인의 취향이 깊게 물든 것들로 가꾸는 나만의 공간을 동경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 지를 신경쓰지 않은 채 내가 바라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잔뜩 채워도 되는 곳이 늘 그리웠다. 어쩌면 내게 있어서 공간을 가꾸는 행위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와 비슷한 의미로 다가왔나보다. 결국 결혼 후에 그 한을 조금씩 풀고 있다.
공간을 가꾸는 과정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감지하는 더듬이가 한층 더 예민해지는 것 같다.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탐구할 수 있는 적절한 도구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나와 남편의 두번째 집이다. 첫번째 집은 서울 우사단로, 살인적인 언덕 위의 낡은 단독주택 2층이었다. 두번째 집은 충주 금가면에 있는 관사 아파트 1층이다. 두 번째 집으로 삶의 배경이 바뀌자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펼쳐졌다. 결혼 후 1년 가까이 지속한 주말부부 생활이 끝나고 남편과 평일을 함께할 수 있는, 간절히 바랬던 평범한 신혼이 시작됐다. 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았던 도시 여자에서 시골 여자로 돌아왔다. 직장인의 신분이 끝나고 주부 및 작가 지망생의 새 신분을 얻었다. 그 외 새 챕터의 흥미로운 경험들을 하는 배경이 이 집이어서 줄곧 행복에 겨웠다.
남편이 군인인 덕에 두 번째 집은 24평 관사 아파트이다. 첫 집은 13평이었는데 갑자기 집이 11평이 넓어졌다. 처음에는 뜬금없이 넓어진 집이 거대한 운동장처럼 느껴져서 남편과 히히덕거리며 집안 산책을 하기도 했다. 뭐 없이 결혼한 우리로서는 꿈같은 일이었다. 실제로도 이 관사 아파트에서 지낼 수 있는 건 남편이 제대하는 5월까지이다. 1년 반 정도 누리는 잠깐의 꿈인 거다.
집에 돌아오면 바로 보이는 것이 이 레이스 커튼이다. 현관문 바로 앞에 있는 방을 안방으로 쓰고 있는데, 침대에서 바로 신발이 보이는 게 싫어 레이스 커튼으로 가볍게 가렸다. 레이스 덕후인 것을 커밍아웃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흔히 레이스를 좋아하면 공주 같은 걸 좋아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레이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손길의 정성이 느껴지는 예쁨 때문이다. 혹 그것 역시 기계로 만들지라도 찍어내듯 무뚝뚝하게 생산되는 다른 공산품과 달리 더 깊은 시간과 정성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여하튼 그러한 이유로 우리 집 구석구석에는 레이스 소재의 사물들이 많다.
현관 한 켠에는 남는 그릇 꽂이를 이용해 만든 행거를 걸어두었다. 현관문에는 나와 예성의 이야기가 담긴 사진, 그림, 청첩장을 붙였다. 현관에서는 출근하고 퇴근하는 예성이와 인사를 나누는데, 인사하는 예성이의 뒤편으로 우리 둘의 연애시절 사진들이 보이면 우리 결혼이 아직도 새삼스럽고 신기하다.
거실에는 텔레비전이 없다(그래도 볼 건 다 본다는, 아니 그 이상을 본다는 것이 함정). 텔레비전이 없다는 것은 이 공간에 내 시선을 빼앗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곳곳에 우리 눈에 보기 좋은 것들, 보고 싶은 것들을 두게 되었다. 우리 사진, 초록이들, 꽃, 좋아하는 작가님의 그림 달력, 남편과 함께 만든 나무 모빌 등이 가장 적절한 곳에 존재하며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덕분에 이곳에 하릴없이 가만히 앉아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내가 앉아있기 좋아하는 자리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첫 번째 집에서 예성과 함께 만든 나무 모빌은 두 번째 집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집에 찾아온 손님들과 함께 사진을 남기는 포토존이기도 하다.
계절 따라 기분 따라 모빌에 다는 오브제를 조금씩 바꾼다. 작은 사물의 변화에도 공간의 공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재미있다.
기분 따라, 계절 따라 달라지는 곳이 여기 또 있다. 거실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선반이다. 첫 번째 집 화장실에 달았던 거울을 이곳에 달았다. 예성과 나의 키에 맞춘 거울 아래 선반에는 두고 싶은 걸 둔다.
내가 좋아하는 이규태 작가님의 그림 달력도 거실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매달 1일이 되어 달력을 바꿀 때마다 작품을 벽에 거는 것 같은 뿌듯한 기분이 든다. 햇볕 좋은 날 오후 3시쯤 커튼 틈으로 새어 들어온 빛이 달력을 지날 때의 장면을 좋아한다.
두 번째 집에 온 이후에는 키우는 식물을 하나둘 늘려가고 있다. 내가 서투르고 게을러서 하늘로 보내버린 식물들도 많지만(엉엉) 용케 살아남은 강력한 친구들이 나를 위로해준다. 겨울이 되어 베란다에 있는 초록이들을 집 안에 들여오니 거실 속 작은 정원이 생겼다.
나무 의자에 방석도 깔았다. 등받이에 내가 좋아하는 민트색의 쿠션과 치앙마이에서 사온 위빙 스카프를 두니 딱딱한 나무 의자가 훨씬 포근해졌다. 천과 실이라는 소재가 공간에 가져다주는 따스함과 안락함에 놀란다. 덕분에 더 오래 앉아있을 수 있게 되어 조금만 피곤해도 침대에 누워버리는 날 붙잡아 준다.
내 눈에 보기 좋은 것들로 채워나간 거실은 머무르기에도 좋은 곳이 되었다.
결혼 전 자취를 할 때에도, 결혼 후 첫 신혼집에서도 부엌은 내게 별다른 의미가 없는 곳이었다. 요리를 거의 안 했기 때문이다. 싱크대는 또 하나의 세면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집에서는 '요리'를 시작했다. 심지어 매일매일. 아침을 먹으면서 점심은 뭘 해야 할지 고민하고, 점심을 먹으면서 저녁은 뭐 할지 고민하며, 저녁을 먹으면서 내일은 또 뭐 먹을지 고민하는 삶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처음 해보는 주부의 역할이 때때로 벅찼지만, 요리의 세계에 입문하니 내 세상이 한층 더 넓어졌다. 부엌에 대한 애정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요리에 대한 애정이 생기면서 부터다.
부엌에 대한 애정은 새로운 로망을 낳았다. 싱크대에서 바라보는 정면에 나무틀의 창문이 있는 부엌, 그 위에 나무 선반과 예쁜 식기구들 등 돈 많이 들 부엌 로망이 생겨 버렸다. 지금은 아쉬운 대로 부엌 베란다 쪽에 있는 창문을 보며 자족한다. 아파트 1층이라 창문에서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선반에는 애정하고 애용하는 주방도구들, 차, 티 코스터, 간식거리 등을 두었다. 냉장고에는 여행 다녀온 곳에서 데려온 자석을 붙였다. 효율적이고 깨끗하게 정리하는 법은 아직 터득 전이다. 아직은 서툴고 엉성한 내 부엌에 있다 보면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공간은 침실이다. 햇볕이 잘 들어오는 침실이라 초록이들이 잘 자라고, 아침에도 눈이 잘 떠진다.
침실로 들어온 햇볕이 레이스 커튼, 식물들과 합작으로 그림자 작품을 만들어낼 때 대단한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신이 난다. 그림자 같은 거 거들떠보지도 않던 나였는데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새롭고도 귀하게 다가온다. 나는 그 변화를 일상의 회복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그건 비어있는 시간이 내게 준 선물이다.
얼마 전 이 세상에 태어난 나의 첫 마크라메를 침대 머리 위해 걸어두었다.
침대 옆에는 좋아하는 향의 초를 두었는데, '왠지 그러고 싶어서 이불보를 깔끔하게 정리한 날' 켜게 된다(드물다는 소리).
화장대에서는 화장을 하기도 하고 아침 묵상을 하기도 한다.
우리 집에는 TV가 없고, 충주에는 우리가 할인받을 수 있는 CGV가 없지만, 침대영화관이 있어서 괜찮다.
흰색 침구와 회색 침구 두 개로 돌려 막기 중인데, 두 침구 모두 린넨 침구이다. 왠지 자연스러운 기분을 주는 린넨 소재를 좋아한다. 사실 초반에는 침구로 사용하기에 촉감이 살짝 거칠었다. 하지만 사용할수록 딱 알맞은 정도의 부드러움으로 조금씩 길들여졌다. 천천히 길들여지는 것들은 특별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와 예성이 공부와 작업을 하는 작업실이다. 결혼을 하면 실현하고 싶었던 로망 중 하나였는데, 이 집에 와서 그 로망을 이룰 수 있었다. 무엇보다 뿌듯한 것은 벽에 단 쌍둥이 선반이다. 마음에 들어서도 그렇지만 아파트 단지에서 버려진 것을 주었기 때문에 더더욱 뿌듯하다. 우리는 종종 프로줍줍러 모드로 온 동네를 감찰한다. 우리의 몇 안되는 공동 취미이다.
이 공간에는 내게 영감을 주는 것들이 모여있다.
거창하게 '작업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나름대로 시늉을 하고 있긴 한데 아직 그렇다 할 작업을 한 건 없다.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하는 내가 이곳에서 과연 어떤 것을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때때로 막막함을, 때때로 설렘을 느끼는 그런 공간이다.
화장실이 딸려있는 이 방은 원래 안방 용도로 만들어진 곳일 텐데, 우리는 옷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손님들이 오면 이곳은 손님방이 된다. 손님방이 생긴 덕분에 참 많은 손님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이 공간 덕에 우리 집이 손님이 멈추지 않는 집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렇게 우리의 주변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두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화장실은 정말 별게 없어서 넘길까 하다가, 그래도 기록하고 싶어 남겨둔다.
이 큰 바구니는 내 친구가 태국에서 나에게 준 선물로, 트렁크에 들어가지 않는 크기의 바구니를 본인이 직접 비행기에 가지고 타서 가져왔다. 마음이 뭉클할 지경의 바구니랄까. 여러 가지 쓸모가 많아 용도를 고민하다가 우선은 가장 필요했던 수건 바구니로 활용하고 있다. 별거 없는 화장실 앞에 예쁜 수건 바구니 있는 게 유일한 자랑이다.
왼쪽이 거실에 있는 화장실, 오른쪽이 옷방에 있는 화장실이다.
며칠 전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다 써서 새로 샀는데, 무심코 두 세트를 샀다가 이 집에서 살 시간이 쓰레기봉투 두 세트를 다 쓸 정도로 길지가 않다는 걸 깨닫고 한 세트를 환불했다. 이제 두 번째 집을 배경으로 머무르고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쓰레기봉투 한 세트만큼 남은 거다.
길지 않는 시간에 대한 자각 이후에 이 기록을 남기고 나니 이 공간에서의 오늘이 더 값진 기분이다. 세 번째 집을 만나는 여름이 오기 전에, 두 번째 집에서의 남은 계절들을 우리의 두 손안에 소중히 모아본다. 어차피 떠날 거니까 그냥 대충 살면 되는 거 아니냐는 시선이 있을 수 있겠지만, 떠날 곳이기에 더 마음 깊이 새겨지는 집에서 하루하루 아껴가며 살고 싶은 게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