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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히 Aug 26. 2018

책갈피를 선물해요

마크라메로 만든 책갈피

나는 기본적으로 뭔가를 만들고 싶은 창작욕구가 있는 사람이다. 다만 그 이상으로 '아무것도 하기 싫은 욕구'가 있고, 대부분 '아무것도 하기 싫은 욕구'가 창작욕구를 이겨버린다. 따라서 뭔가를 만들기로 결심한 뒤 실제 움직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통 사람보다 좀 더 느린 것 같다. 하지만 굼벵이 이다정이 비교적 적극적으로 움직일 때가 있다. 창작의 동기가 '선물'일 때다. 


애정하는 사람을 위한 선물을 만들 때는 만드는 과정 자체가 가치있게 여겨진다. 크면서 부단한 노력으로 어느 정도 철판이 생기긴 했지만, 나는 어린 시절부터 수줍음이 많았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 마음들을 표현하고 싶을 때는 말로는 쑥스러워 잘 못하겠으니 선물이나 편지를 주 도구로 썼었다. 손에 천 원짜리 몇 장을 쥐고 팬시점에서 좋아하는 이의 생일 선물을 고를 때면, 그 선물을 고르는 시간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여러 복잡한 생각들로 쉼 없이 꽉 찬 내가 그 시간만큼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생각하며 그 한 사람에게 마음껏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욕심 많고 이기적인 내가 그 시간 동안 좋은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연장선 상에서 누군가를 위한 선물을 만들 때도 동일한 마음이다. 


'선물'이 동기일 때 더 잘 움직이는 이유에는 '마감일'의 덕도 있다. 나를 위한 무언가를 만들 때도 참 즐겁지만, 나를 위한 것은 언제든지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행동을 자꾸 미루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선물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면, 자연스럽게 마감일이 생긴다. 보통은 그 사람을 만나는 날로 마감일이 설정된다.

이번에도 선물 마감일이 생겼다. '이렇게 사랑하면서 살아야 하는구나'를 삶으로 보여주는 언니가 있다. 이번 마감일은 그녀가 우리 집에 놀러 오는 날이었다. 보통은 손님을 위한 선물로 요리를 하는데, 베푸는 클래스가 남다른 그 언니는 내게 아무 요리도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다. 아무리 그래도 멀리서 오는 손님에게 얻어먹기만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뭐라도 좀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점심 메뉴부터 후식까지 다 계획해 놨다며,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자기를 도와주는 거라고 나를 강력히 말렸다. 결국 난 진짜 아무 요리도 안 하기로 했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요즘 가까이하고 있는 마크라메를 떠올렸다. 기본적으로 책을 즐거이 읽고, 논문을 쓰는 중이라 많은 책을 봐야 하는 그녀를 위해 마크라메로 책갈피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떠올리며 한 매듭 한 매듭씩 쌓아 마크라메 책갈피를 완성했다.

우리 집에 놀러 온 그녀는 힐링캠프를 진행하는 것 마냥 아낌없이 마구 베풀어 주었다. 너무 많은 것을 받아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그에 비하면 내 선물은 너무 작은 것이었지만, 수줍게 이 마크라메 책갈피를 전했다. 책갈피를 받아 든 그녀는 환한 미소와 함께 이 책갈피를 볼 때마다 격려를 느낄 것 같다고 말했다. 격려는 늘 그녀로부터 내가 받은 것이었는데, 이 작은 것으로 그녀에게 격려를 선물할 수 있었다니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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