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조림 만들기_해보는 시간
이번 주말 이틀 연속 손님을 맞이했고, 나에겐 밤조림(보늬밤)이 있어 든든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일본판에서 가을을 맞은 주인공이 밤조림을 만든다. 그 장면의 느릿한 분위기가 내가 사랑하는 분위기였고, 밤조림 역시 무척 맛있어보였다. 영화를 볼 당시의 계절은 여름이었는데, 가을이 오면 꼭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영화를 보다가 잠깐 정지시키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을 까먹지 않기 위해 다이어리를 가져와 '밤조림 만들기'를 적어두었다. 나의 첫 밤조림은 그렇게 여름부터 아껴둔 마음을 실현한 음식이다. 겁도 없이.
10월, 여기저기서 밤을 한주먹씩 주길래 가을이 온 것을 알았다. 바구니에 담긴 밤을 보며 밤조림을 만들던 영화 속 주인공의 차분하고 달콤한 분위기를 재현할 꿈을 꾸었다. 1년 반 만의 출근을 시작하기 전전날, 나의 무소속 라이프를 마무리하는 기념으로 호기롭게 밤조림을 만들기 시작했다. 밤 양이 얼마 안되고, 낮에 시작했으니 오늘 밤 안에는 끝나겠지 했었다.
역시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새벽 네시가 되었는데도 난 가스레인지 앞에 앉아 졸면서, 미련한 나 자신과 까다로운 밤을 욕하고 있었다. 낭만을 품은 밤조림마저도 이 악물고 만드는 스스로가 어찌나 한심하던지.
내가 상상한 장면은 이런 게 아니었다. 나란 인간은 평생 이 악물고 벼락치기 하다 이가 다 나갈 거다 생각하며 분노의 밤조림을 만들었다. 내가 다시 이걸 만드나 봐라 했다.
하지만 역시 난 망각과 낙관에 능하다. 두 달 가까이 숙성시킨 밤 조림을 손님들과 나누며, 내년엔 좀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기분.
밤조림의 달콤함이 이렇게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