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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Oct 08. 2022

어머니랑 같이 잤다

당연하지 않고 특별한 일

어머니랑 같이 잠들기는 어려운 일이다. 엄마 품에서 잘 나이를 지났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집'에는 어머니가 안계시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집'이라 부르는 공간에는 아버지와 언니, 나, 남동생 그리고 강아지 보리만 있고 어머니는 '어머니집'에 있다. 우리집과 어머니집, 이렇게 따로 부르게 된 이후로 '가족과 같이 잔다'는 당연한 일이 어려워졌다. 어머니집에서 같이 밥을 먹거나 같이 놀아도 해가 지고 잘 시간이 다가오면 인사를 하고 우리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돌이켜면 '오늘은 엄마랑 같이 자야지.' 하는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다.


최근에 어머니와 '뮤지엄 나잇'을 함께 보내고 왔다. '뮤지엄 나잇'은 영도에 있는 해양박물관에서 해양영화제의 영화를 보며 하룻밤을 자는 프로그램이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이걸로 남자 친구랑 데이트를 하면 좋으려나 싶었는데 '영도'에서 '1박'이라는 걸 찬찬히 생각해보니, 어머니랑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신청한다고 모두 당첨되는 것은 아니기에 어머니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신청부터 하였다. 그 뒤에 당첨되었다는 문자가 왔고 그제야 어머니한테 그날 시간이 되는지, 나랑 같이 자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물어보지도 않고 결정해버린 나쁜 딸에게도 어머니는 흔쾌히 좋다고 하셨다.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게 낯설고 오픈 채팅방이 처음인 어머니는 프로그램 전날까지도 긴장하신 것 같았다. 내가 잘 챙겨드려야지 하는 마음을 먹고 어머니집 앞에서 어머니를 만났는데 상상과는 다른 모습이셨다. "잠은 집 가서 자면 되지." 하시며 밤새 영화를 다 보겠다 말씀하신 것을 시작으로 문제를 못 맞혀 기념품을 못 받았다고 엄청 아쉬워하시고 치유음악회에서 봄눈별님의 공연을 보고는 엉엉 울기도 하셨다. 어머니는 매 순간 진심이셨다.


어머니의 우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면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우리 엄마, 이렇게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이었지.' 하는 생각이 더 컸다. 어릴 적 학교 행사에 오면 누구보다 열심히 뛰고 소리 질러 응원하던 엄마, 삼 남매가 어떤 사고를 쳐도 뚝딱뚝딱 다 수습하던 커다란 엄마의 모습이 생각났다. 우리 엄마 언제부터 이렇게 작아졌지? 언제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했지? 이걸 왜 이제야 알았지?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죄송한 마음에 앞으로 엄마랑 이것저것도 다 같이 하고 여기저기도 다 같이 다녀야지 하는 욕심만 덕지덕지 늘어간다.


아침 6시 요가까지 알차게 하고 박물관을 나왔는데 시간이 너무 일렀다. 8시가 되지도 않았고 우리는 헤어지기 아쉬워 점심때까지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적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죄송하고 아쉬웠다. 앞으로는 이런 시간이 대수롭지 않을 정도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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