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랑 같이 잠들기는 어려운 일이다. 엄마 품에서 잘 나이를 지났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집'에는 어머니가 안계시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집'이라 부르는 공간에는 아버지와 언니, 나, 남동생 그리고 강아지 보리만 있고 어머니는 '어머니집'에 있다. 우리집과 어머니집, 이렇게 따로 부르게 된 이후로 '가족과 같이 잔다'는 당연한 일이 어려워졌다. 어머니집에서 같이 밥을 먹거나 같이 놀아도 해가 지고 잘 시간이 다가오면 인사를 하고 우리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오늘은 엄마랑 같이 자야지.' 하는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다.
최근에 어머니와 '뮤지엄 나잇'을 함께 보내고 왔다. '뮤지엄 나잇'은 영도에 있는 해양박물관에서 해양영화제의 영화를 보며 하룻밤을 자는 프로그램이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이걸로 남자 친구랑 데이트를 하면 좋으려나 싶었는데 '영도'에서 '1박'이라는 걸 찬찬히 생각해보니, 어머니랑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신청한다고 모두 당첨되는 것은 아니기에 어머니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신청부터 하였다. 그 뒤에 당첨되었다는 문자가 왔고 그제야 어머니한테 그날 시간이 되는지, 나랑 같이 자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물어보지도 않고 결정해버린 나쁜 딸에게도 어머니는 흔쾌히 좋다고 하셨다.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게 낯설고 오픈 채팅방이 처음인 어머니는 프로그램 전날까지도 긴장하신 것 같았다. 내가 잘 챙겨드려야지 하는 마음을 먹고 어머니집 앞에서 어머니를 만났는데 상상과는 다른 모습이셨다. "잠은 집 가서 자면 되지." 하시며 밤새 영화를 다 보겠다 말씀하신 것을 시작으로 문제를 못 맞혀 기념품을 못 받았다고 엄청 아쉬워하시고 치유음악회에서 봄눈별님의 공연을 보고는 엉엉 울기도 하셨다. 어머니는 매 순간 진심이셨다.
어머니의 우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면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우리 엄마, 이렇게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이었지.' 하는 생각이 더 컸다. 어릴 적 학교 행사에 오면 누구보다 열심히 뛰고 소리 질러 응원하던 엄마, 삼 남매가 어떤 사고를 쳐도 뚝딱뚝딱 다 수습하던 커다란 엄마의 모습이 생각났다. 우리 엄마가 언제부터 이렇게 작아졌지? 언제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했지? 이걸 왜 이제야 알았지?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죄송한 마음에 앞으로 엄마랑 이것저것도 다 같이 하고 여기저기도 다 같이 다녀야지 하는 욕심만 덕지덕지 늘어간다.
아침 6시 요가까지 알차게 하고 박물관을 나왔는데 시간이 너무 일렀다. 8시가 되지도 않았고 우리는 헤어지기 아쉬워 점심때까지 한참 더 이야기를나눴다. 이렇게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적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죄송하고 아쉬웠다. 앞으로는 이런 시간이 대수롭지 않을 정도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