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취향인데 네가 안 샀을 거 같아." 친구 U가 내 손 선풍기를 보고 이 말을 했다. 너무 정확한 추리여서 깜짝 놀랐다. 내가 귀여운 걸 좋아해서 보기엔 나의 취향이지만 굳이 내가 사서 쓸 물건은 아니었고, 실제로도 브리타를 사서 리뷰를 쓰고 받은 거였다. 이 구구절절한 과정은 모르겠지만 어떻게 이걸 딱 알아차렸을까 너무 신기했다. 시간이 많이 쌓인다고 모두 이럴 순 없을 텐데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친구를 발견할 때마다 신기하고 낯설다.
U와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이다. 1학년 말에 전학 온 나와 커다랗고 땡그란 눈을 가진 인형 같았던 U. 햇수로 헤아리면 벌써 20년인데 매번 만날 때마다 할 이야기가 많은 건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 같다. 초등학생 때 썼던 빨간 안경, 좋아하고 존경하는 중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 수능이 끝나고 4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던 롯데리아, 녹물이 나왔던 게스트 하우스, 갑자기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도 한참 웃었던 여행, 성인이 된 지 한참인데 술을 마실 때마다 어른 같다고 하는 우리. 과거의 추억을 곱씹을 때마다 같은 이야기 하는데 그래도 늘 재미있다. 새로운 이야기는 매번 또 쌓이고 또또 곱씹게 된다.
이번 여행은 몇 년만이었는데,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만이 유일한 계획이었다. 만나자마자 수다를 시작해 그 간의 공백을 메우는 근황을 나누고 고민을 이야기하고 잊지 않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수다를 나누는 사이사이 친구가 '또 다른 나'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바쁜데 행복하다고 말하자 친구는 '네가 어디에 있더라도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이야기하고. 내가 고민이 많다고 하니까 '그런데 고민이 없으면 불안해할 거잖아' 하고 답해줬다. 혼란스럽고 답만 찾으려고 했던 나에게 이런 이야기가 그 자체로 위로가 되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이게 나한테 자연스러운 거구나 하고 나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 친구는 이런 사람이었지 또 느낀다. 말이 많은 내 옆에서 지치지도 않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고민을 본인의 고민처럼 생각해주고 진짜로 나에게 필요한 말을 해주는 사람. 이 글을 적으면서 내가 친구에게 해준 게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느꼈다. 나도 친구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친구보다 친구를 더 아는 사람이고 싶은데 늘 만남 뒤에 이런 아쉬움이 생긴다. 여행을 약속한 겨울에는 내 이야기는 줄이고 친구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줘야겠다. 28년 인생 중 20년을 함께 했으니 당연히 앞으로의 20년도 서로의 곁에 있을 거라 믿는다. 사... 는동안 많이 벌고 많이 놀러 다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