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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다정 Oct 21. 2022

기꺼이 처음을 내주는 사람들

모든 게 다 처음입니다

저번 주 토요일에 '영도, 지역과 관계 인구'라는 주제로 북토크를 했다. 처음으로 작가님과 소통하고 진행도 했다. 그 과정에서 혼자만의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결국 끝이 났다. 마무리 인사를 하고 나서 작가님이 "진행을 참 담백하게 하시네요."라는 말씀을 주셨다. 다른 때라면 (아마도) 문장 그대로를 그냥 받아들였을 텐데 처음이었기에 곱씹게 되었다. 작가님께서 담백하다고 말하는 건 무슨 의미일까. 진행을 못 본다는 말을 에둘러 말하신 걸까. 진행하면서 종종 혼이 빠진 순간이 있기 때문에 걱정에 걱정을 더해 저 한 문장을 계속 곱씹었다. 그렇게 나는 땅굴을 파고 주변 사람들은 다독여주며 꺼내는 과정을 몇 번이나 했다. 고백하자면 그래서 더 어리광 부린 것 같다. 애정결핍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나의 일부니까. 그러다 결국 "그냥 그 문장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돼요?"라는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아, 진짜 그냥 담백했나 보다. 그랬나 보다. 그랬나 봐.


이번 주엔 공연 섭외 전화도 드렸다. 몇 번이나 확인할 수 있고 답을 기다리면 되는 이메일이나 문자가 아니라 실시간으로 소통해야 하는 전화는 늘 조금 두렵다. 전화를 하기 전 내가 말씀드릴 사항과 확인해야 할 내용을 대본처럼 적어뒀는데 하필이면 길에서 전화를 받게 되었다. 당황했지만 우선 머릿속의 체크리스트를 꺼내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나만 차근차근이라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지만) 감사인사드리고 리허설 시간 확인하공연을 듣는 인원의 특성과 인사말에 담겼으면 하는 내용 등을 전달드리고 질문에 답을 하다 보니 '뭐 하나 빠진 것 같은데...' 싶었지만 통화가 끝났다. 이 일을 나에게 맡겼고 길에서 나의 통화를 들은 쌤이 "아티스트분께 지역성은 너무 어려운 이야기 아니에요?" 라며 웃으셨다. 기억에 어렴풋이 그 문장이 남아있었고 부끄러웠다. 대본을 안 보니 쉽게 전달할 말도 어렵게 전달하는구나 하며 다시 한번 꼼꼼한 준비의 필요성을 느낀다. 다음번엔 더 잘하면 돼! 잘할 수 있지!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인다.




올해는 처음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북토크 진행은 물론 꾸준한 독서모임부터 어딘가로 출퇴근하거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을 하는 일까지. 모두 처음이다. 처음은 서툰 게 당연한데 처음도 잘하고 싶은 까닭은 기꺼이 처음을 내주는 사람들 때문이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일, 심지어 능숙하게 잘하는 일을 굳이 초보에게 넘기는 일은 마음을 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한 번 더 체크하고 혹시 모를 불안이나 위험을 감수하는 비효율적인 과정을 기꺼이 함께 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이거나 애정이거나 어떤 마음인지 정확히는 몰라도 마음을 쓴다는 건 확실하기에 나는 오늘도 열심히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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